한나라당엔 몹쓸 망령이 하나 있다. 이 망령은 평소엔 "집권을 위해 반드시 타도돼야 한다"며 구박을 당한다.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다시 살아나서 나에게 표를 달라"고 매달리는 의원들의 러브 콜에 몸값이 치솟는다. 바로 '영남 지역주의'다.
5일 대구 제이스 호텔에서 열린 대표ㆍ최고위원 후보의 대구ㆍ경북(TK) 합동 연설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두 경합을 벌이는 이재오, 강재섭 후보가 앞장 서 "내가 TK의 적자(嫡子)"라고 우겼다.
이 후보는 "내 고향은 경북 영양이고 고등학교까지 영양에서 나왔다"며 "영양 안동 청송 영주 봉화 울진 예천 문경 상주에 동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선거 초반부터 자신의 지역구는 서울 은평이라며 '수도권 대표론'을 역설하던 그가 맞나 싶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 서구에서 내리 5선을 한 강 후보가 가만 있을 리 없다.그는 "TK는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5선 의원으로 키워 준 육체와 영혼과 마음과 정치의 고향"이라며 온갖 수사를 구사한 뒤 한껏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후발 주자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이 지역 출신인 박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여러분께 바치겠다"(강창희 후보), "사위로 대구 토박이를 받았다"(정형근 후보), "본관이 경주이고 영양 고추를 먹고 자랐다"(이방호 후보)
정치인이 지방 행사에서 인사말로 지역과의 인연을 소개하거나 덕담을 하는 것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이것은 그 수준을 한참 넘는, 노골적인 지역정서 부추기기다. 가뜩이나 '영남 당'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당의 대표 후보들이 바로 거기서 표를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다른 지역 유권자들은 어떻게 쳐다볼까.
정치부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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