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방안을 보면 경기관리 노력을 배가하면서 기업투자 활성화와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제한된 부양책'이라는 평가에서 보듯 정책기조와 방향의 초점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수많은 과제를 백화점식으로 늘어 놓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정책수단이 제한된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거시지표에 치중한 이런 정도의 해법으로 서민의 피부에 닿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여당과 협의를 거쳐 마련된 방안은 적극적인 재정지출사업으로 내수를 자극하고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연장하는 등의 몇 가지를 제외하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찾기 힘든다.
경기회복 속도가 하반기에 다소 주춤하겠지만 숨고르기 차원일 뿐이어서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은 여전하고, 경상수지 적자폭의 급감을 제외한 소비 설비투자 물가 고용 수출 전망도 장밋빛 일색이다.
그대로만 된다면 반길 일이다.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와 전문가들은 "경기가 정점을 넘어 하강국면에 접어든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며 정부의 안이한 진단과 처방에 잇달아 경고를 보내고 있다. 유가와 환율 등 대외변수가 여전히 불안하고 갈수록 나빠지는 기업과 가계의 심리지표를 반전시킬 리더십과 정책조합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경제를 어떻게 끌고가겠다는 철학과 자신감이다. 저출산ㆍ고령화 대책 등 중ㆍ장기 과제를 위한 세제개혁 청사진을 제시하고 각종 덩어리 규제를 혁파하는 일은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시중의 부동자금이 마침내 500조원을 넘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사안이다. 재정경제부 고위관리는 "비관적인 언론보도가 경제주체의 심리를 위축시켜 자기예언적(self-fulfilling)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불평했다는데, 정부야말로 자기예언적 낙관론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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