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4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 ‘괴물’의 개봉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면서도“4일 시사회 때 박수가 많이 나와 기뻤다”는 그의 말에는 영화의 완성도와 흥행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 자신감 뒤에는 525만 관객의 뇌리에 ‘웰 메이드’라는 인장을 선명히 찍었던 ‘살인의 추억’의 성과와 5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얻은 ‘괴물’에 대한 호평이 든든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괴물’은 봉 감독이 오래도록 가슴에 품어온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봉 감독은 고교 3학년 때인 1987년 13층 자신의 방 창문 너머로 잠실대교 교각에 달라 붙은 “괴생물체”를 본 후 ‘괴물’의 영화화를 꿈꿔왔다. 그는 “대입 스트레스가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 괴물을 봤다. 이상한 생물체가 교각을 올라가다 강물 위로 ‘뿅’ 하며 떨어졌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십 수년간 봉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괴물의 이미지에 어린 시절 잡지를 통해 본 네스호의 네시가 겹치면서 ‘괴물’의 뼈대가 형성됐고, 2000년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무단 방류한 ‘맥팔랜드 사건’이 살점이 되면서 ‘괴물’은 팔딱이는 이야기로 발전했다. 가족을 중심으로 공포의 외연을 확장해가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싸인’은 가족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괴물’의 이야기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괴물영화라는, 한국에서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여겨지던 장르에 도전하기까지 봉 감독은 주변의 지독한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다. “모두들 ‘제 정신이냐. 우리 말 들어라’며 강하게 말렸죠. 돈과 기술과 에너지를 한껏 쏟아내야 하는 작업이라서 2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한강이 ‘괴물’의 주요 키워드”라고 말했다. 일상적인 공간과 환상적인 이야기를 충돌시키기에는 한강이 안성마춤이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황금 물결 출렁이는 평화롭던 논이 끔찍한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된 것처럼, 한강을 일대 활극의 무대로 뒤바꾸고 싶었습니다.”
미군의 독극물 방류와 환경 문제 등 민감한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봉 감독은 억지로‘괴물’에 거창한 메시지를 담으려 하지는 않았다. “영화는 무엇보다 재미가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단지 괴물과 힘겹게 싸우는, 보잘 것 없는 한 가족의 외로움과 처절함을 보여주려 했죠. 우리가 약자를 도와준 적이 있나 하는 점을 돌이켜보게 하는 것이 굳이 주제라면 주제라고 할까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화가 부조리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살인의 추억’ 속 사회상은 연쇄 살인마처럼 어둡고 무섭습니다. ‘괴물’ 속 가족은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외부 환경때문에 힘겨워 하죠.” 사회에 의해 무력화하는 개개인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같은 맥락에 있다는 설명이다.
내용과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괴물’의 핵심은 결국 특수효과의 완성도. 봉 감독은 “전체 특수효과의 80%가 ‘참 잘했어요’라는 등급을 매길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자평했다.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봉 감독의 머리는 차기작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하다. 그는 “다음 영화는 순수 창작 시나리오나 SF요소가 가미된 프랑스 만화 ‘설국 기차’를 원작으로 한 작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동작대교를 지날 때 마다 바로 고개를 돌린다”고 말할 정도로 치열한 제작과정을 거쳐 ‘괴물’이라는 ‘대물’을 만들어낸 그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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