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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괴물'/ "더 무서울 괴물은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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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괴물'/ "더 무서울 괴물은 사회였다"

입력
2006.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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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괴물이 나타난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여가를 즐기던 둔치는 일순간 아비규환의 연옥(煉獄)으로 돌변한다. 괴물에게 딸을 빼앗긴 둔치의 매점 일가족은 괴물과 일대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싸워야 할 괴물은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독극물에 의해 탄생한 거대 돌연변이가 아니다. 체제라는 허울 아래 공익을 내세워 개인의 삶을 옥죄는 사회가 그들이 먼저 상대해야 할 더 큰 괴물이다.

‘괴물’은 잘 빠진 장르 영화다. 그러나 할리우드식 공산품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장르의 법칙을 끌어 안으면서도 장르적 관습을 통렬하게 파괴하는 낯선 시도가 있어서다.

영화는 초반부터 괴물영화(Creature Movie)의 장르 법칙을 여지 없이 무너뜨린다. 어두운 조명 아래 슬쩍슬쩍 괴물 몸체의 일부분을 보여주며 감질나게 하는 종래의 괴물영화와 달리 백주 대낮에 괴물의 면모를 처음부터 통째로 유감없이 드러낸다. 숨겨진 유능한 ‘해결사’가 등장해 멋들어지게 괴물을 쓰러뜨리는 과정도 없다. 무지렁이 같이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고독한 분투기가 영웅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들이 싸우는 곳에서는 으레 있어야 할 통쾌함은 사라지고 피와 눈물과 삶의 아이러니가 넘친다. 그러면서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괴괴한 장면 등을 통해 장르의 전통을 충실히 복기해나간다.

이렇듯 익숙함을 발판으로 낯선 정서를 풀어내는 ‘괴물’의 독특한 화법은 관객의 눈을 단번에 낚아채기에 충분하다. 극단의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근데 사망잔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식의 소금기 머금은 유머가 수시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도 상업영화로서의 장점이다. 대사 한 마디, 표정 하나하나만으로도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의 연기 앙상블도 일품이다.

하지만 ‘괴물’의 진정한 미덕은 장르를 비트는 잔재미나 우스개 소리에 있지 않다. 그럴싸한 컴퓨터 그래픽이 빚어낸 화려한 볼거리도 봉준호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곳은 아니다. 봉 감독은 공상과학 소설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금, 이곳이라는 시공간적 맥락 속에 위치 지우며 일상에 똬리를 튼 사회 부조리의 이면을 들춰낸다.

‘괴물’의 전반적인 이음매는 이야기와 주제의식이 스릴러라는 장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했던 ‘살인의 추억’만큼 매끄럽지는 못하다. 그러나 높은 완성도를 통해 특정 장르 편식증에 걸린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27일 개봉, 12세.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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