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8년 8월 31일 ‘대포동1호’를 발사한 지 이틀 뒤인 9월 2일 아ㆍ태평화위원회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사일 발사가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발사 후 4일이 지난 9월 4일 외교부 담화를 통해 “발사된 것은 탄도 미사일이 아니라 과학연구사업용인 ‘광명성1호’였다”고 주장했다.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북한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 외무성 이병덕 연구원은 5일 오전 김영남씨 취재를 위해 평양을 방문중인 일본 기자단과 가진 회견에서 “미사일 발사는 주권”이라고 말해 북한이 1988년과 비슷한 입장 표명 단계를 밟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주변국의 반응을 당분간 지켜본 뒤 대외적 대응의 수위를 정하는 수순이 예상된다.
98년에는 장거리 미사일 한 발만 쏘았지만 이번에는 불꽃놀이를 하듯 중단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 미사일 등 7발을 잇따라 발사함으로써 ‘시위 효과’를 극대화했다. 98년 당시 ‘대포동1호’는 일본 열도를 건너 1,550㎞ 정도 날아가 발사능력을 과시했지만 이번의 대포동2호는 발사 40여초만에 공중 폭발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 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키우고 있다.
98년 당시에는 한국을 포함해 미ㆍ일 등 주변국이 미사일 발사 전 결정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관련국의 정보망에 발사 준비 단계가 노출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는 연료 주입단계부터 한ㆍ미ㆍ일 3국과 러시아와 중국까지 나서 미사일 발사를 저지하려 했으나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군사력 과시를 통해 미국의 공세적 대북 전략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98년 상황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98년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가 공고함을 보여주려는 ‘공세적 과시’였다면 이번은 미일 군사동맹강화 등에 따른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수세적 과시’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송두영 기자 d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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