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반도의 정전협정 유지ㆍ관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역할확대 카드를 또다시 제시, 한미 군사동맹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유엔사 강화 방안은 현재 한미 양국 군사당국 간에 진행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 상원은 최근 미 국방부와 국무부에게 한국전 참전국의 유엔사 참여와 역할 확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의 국방수권법을 입법했다. 특히 상원은 보고서에 ‘유엔사의 대북 억지 임무를 보강하기 위해 (한국전쟁 참전국을 상대로) 평시에 군병력을 배치토록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와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까지 포함시키라고 요구했다. 이는 3월 버월 벨 한미연합사령관이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한국전 참전국의 역할을 늘리고 유사시와 작전계획 수립에 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진정한 다국적 연합기구가 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힌 유엔사의 개편 방향보다 한층 진전된 내용이다.
유엔사는 1978년 창설된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작전통제권을 넘기고 정전협정 관련 기능만 수행하며 역할이 크게 축소됐다. 더욱이 한미 양국의 합의에 따라 전시 작전통제권마저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하게 되면 그 기능은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식물 사령부’로 전락한 유엔사를 무장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한 논의 구조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하게 되면 연합사는 해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자 미국이 유엔사 강화를 통해 유사시 한반도의 전쟁수행 기능을 유지하려 한다는 관측이다. 주한미군이 연합군의 모자를 벗고 유엔군의 깃발 아래 한반도에서 대북 억지 기능을 계속 수행한다는 구도다. 일각에서는 78년 연합사 창설 당시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령관에 위임한 만큼 연합사가 해체되면 작통권은 유엔사로 넘어갈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과 한국 국방부는 “남북 교류 협력의 증진에 따라 정전협정 관리라는 유엔사 고유임무가 확대된 데 따른 조치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현재 16개 참전국 가운데 7개국만 유엔사에 별도의 참모진을 파견하고 있는 상황을 들어 군병력을 파견할 참전국은 없을 것이란 것이 우리 국방부의 판단이다. 또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환수할 경우 주한미군은 해ㆍ공군력 위주로 전쟁수행 지원기능만 담당한다는 설명이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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