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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방송위원회를 먼저 탓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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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방송위원회를 먼저 탓하라

입력
2006.07.0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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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나빠지고 살기가 어려워지면 대통령이 욕을 먹는다. 우리 가게 장사가 안 되는데 왜 대통령인가? 우리 집 살림살이는 경제정책에 의해 좌우되고, 그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관료들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에게 장ㆍ차관을 맡기는지 감시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다. 나 개인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이 엉망이면 누가 욕을 먹어야 하는가? 방송보도의 공정성이 위태로워지고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드라마가 횡행하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억지 오락 프로가 판을 친다면 누구에게 딴지를 걸어야 하는가? 담당 PD나 본부장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방송의 총괄책임을 지는 주체는 방송위원회다.

비전을 제시하고 방송정책의 근간을 만들고 방송의 말단신경까지 관리, 감독, 규제하는 기관이다.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 할 뿐이지, 방송위원회야말로 내 일상생활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다. 그래서 누가 방송위원이 되는지는 누가 경제부총리가 되느냐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나의 일상에 있어서.

사람들, 심지어 상당수 방송 관계자들까지 방송위원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누가 되든 별 상관이 없다는 냉소와 허무가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 그동안 그래왔다. 방송위원이라는 중대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그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3기 방송위원 구성이 거의 마무리된 지금, 확정되었거나 확실시되는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냉소와 허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배가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비난받는, 혹은 비난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미 여러 단체나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니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생략하기로 하자. 단, 이들을 추천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방송이 정치적 이해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만들어진 방송위원회지만, 그 위원은 바로 정치인들이 선정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제도 자체가 문제될 수는 없다. 방송위원이 어떤 직책인지 잘 알고 있고, 방송 발전을 위한 진정성이 앞선다면 무엇이 문제되랴. 하지만 현실은 가장 정치적이다. 여야는 정치적 성향이 자기네와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전문성에 대한 염려는 부차적이다.

신문, 잡지사 경험은 '언론계' 경력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신방과 교수라면 일단 전문가로 인식된다. 드라마와 쇼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방송ㆍ통신의 융합이나 영상 콘텐츠 산업이 당장의 현안인 마당에 어떻게 이들이 '방송 전문가'일 수 있는가?

정말 궁금하다. 여야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방송위원이 어떤 일을 하며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알고 있는 걸까? 신세진 사람에게 빚 갚는 심정이나 마음 맞는 사람에게 선물 주는 심정으로 인선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문광위에서는 비교섭단체 의원들의 항의도 적당히 묵살하며 추천 건을 가결시키고, 인선에 대한 비판이 아무리 반복돼도 정당들은 해명 하나 없이 밀고나가는 것이다. 오죽하면 2기 방송위원 임기만료를 두 달 넘기도록 새 위원을 임명하지 못했을까. 대단한 쟁점이 있어서 고민하고 토론하느라 늦어진 것이 아니다.

그냥 방송위원(회)에 대한 그들의 안이한 인식 때문이다. 미국 FCC의 경우, 위원으로 선임되기 위해서는 상원 청문회의 인사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가 추천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사유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당사자 역시 자신의 방송철학은 무엇인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 시원하게 밝힐 기회가 없다.

최근 야당 의원들이 방송위원을 국회가 탄핵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성과에 대한 평가를 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그 이전에 방송위원(회)에 대하여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지 않다면, 걸핏하면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탄핵을 남발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기 방송위원으로 추천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이 걱정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지금의 왜곡된 정당 안배식 추천 제도를 개선해야겠지만, 당장 느끼는 우려는 정말 극복하기가 버겁다. 지금의 방송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에게 부탁한다. 방송위원회와 그 위원들을 추천한 정치인들을 먼저 탓하고 욕하라.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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