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탱크 위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북소리를 낸다. 몇 년 전 용도 폐기된 그 물탱크 안에서는 지금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불안해 하면서 시끄러운 빗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들을 그곳에 옮겨 놨었다.
물탱크에 기대 비스듬히 몸을 눕히고 새끼들에게 젖을 빨리던 그 고양이가 눈에 선하다. 고달픔과 위기감에 시달려 강퍅해진 얼굴이었다. 이 험한 곳을 떠서 살기 좋은 곳으로 가지 않은 게 내 탓인 것만 같다.
젖을 채 떼기도 전에 어미를 잃고 새끼들끼리 산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처음에는 곧잘 옥상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같더니 이제는 통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먹을 걸 놔두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때나 잠깐 나온다. 안경을 쓰고 보니 꼴이 영 말이 아니다. 꾀죄죄하고 비쩍 마르고 병색이 완연하다. 제 어미가 있었으면 핥아주고 빨아줘서 윤이 났을 텐데.
나도 고양이에 대해 무지해서 기껏 우유나 사료를 줬는데 새끼들에게는 너무 거친 먹이였다. 쩔쩔매기나 했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차라리 내가 없었으면 새끼 고양이들이 잘 보살펴줄 사람을 진작 만났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대로 장마를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