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영화 ‘페이스 오프’를 현실화했다고 해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끈 얼굴 이식수술에 대한 보고가 권위적인 영국 의학 저널인 ‘랜싯(Lancet)’ 4일자에 실렸다. 수술팀의 보고와 함께 실은 코멘트(해설기사)에서 독일 키엘대의 파트릭 바른케 박사는 “안면 재건술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베르나르 드보셸(아미앵병원) 박사팀은 추가로 얼굴 이식 수술을 실시할 계획이고, 영국 로열 프리 병원 피터 버틀러 박사팀은 얼굴 전체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기 위해 신청자 29명 중 4~5명을 선정하는 등 얼굴 이식이 신장이나 각막 이식처럼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얼굴을 이식받은 환자가 겪을 정체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혈관 근육 신경 등 통째로 이식
세계적 주목을 받은 얼굴이식 환자는 프랑스의 38세 여성인 이자벨 디누아르. 그는 지난해 5월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후 쓰러진 상태에서 개에게 얼굴을 물어 뜯겼다. 이후 지난해 11월 동갑의 뇌사자 여성으로부터 코, 입술, 턱 등 얼굴 아랫부분을 이식받았다.
이자벨을 수술한 베르나르 드보셸(아미앵병원) 박사와 장 미셸 뒤베르나르(에두아르 에리보 병원) 박사는 랜싯에 보고한 논문에서 “수술 후 4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환자의 외모, 감각, 수용정도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환자 자신의 엉덩이 등에서 이식을 하는 기존 방법보다 월등히 나은 성과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드보셸 박사팀의 수술법은 얼굴의 복잡한 조직을 통째로 갖다 붙인 것이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는 마치 과일 껍질을 벗겨내듯 얼굴 피부만 살짝 벗겨내 옮겨 붙이지만 실제 얼굴은 수많은 근육과 중요한 신경이 지난다. 이자벨의 수술은 얼굴 양쪽의 동맥과 정맥을 이어 붙이고, 코와 입 안쪽의 점막을 재건하고, 미세한 신경을 잇고, 턱 위에 운동신경과 근육을 붙인 뒤 피부를 덮는 복잡한 5시간의 수술이었다.
이처럼 기증자로부터 얼굴 조직을 적출해 이식하면 환자 자신이 조직을 떼어야 하는 부담은 없지만 평생 면역거부반응의 짐을 져야 한다. 이자벨은 다른 장기이식에서처럼 면역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기증자로부터 얼굴을 기증받았지만 면역억제제를 처방받고 기증자의 골수세포도 이식했다.
이자벨은 수술 후 1주일만에 음식을 먹고,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으며, 이식부위로 근육수축이 전달되는 정도로 급속히 이식에 적응했다. 지난해 2월 언론에 모습을 공개했을 때에도 이자벨과 수술팀은 입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지만 모든 기능이 회복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입 주위의 근육은 쉽게 회복되지 않아 물리치료가 진행중이다.
●정체성 회복은 남은 문제
하지만 얼굴 이식은 먹고 말하고 웃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랜싯은 의학적 보고와 함께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설을 나란히 실어 “얼굴 이식은 정체성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얼굴이 바뀐 주인공들은 사회적 관계와 지위, 결국 인생 자체가 뒤바뀌어버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런 문제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1952년 최초의 생체 신장 이식, 1967년 최초의 심장 이식이 행해진 뒤 장기이식은 장기 매매처럼 기증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얼굴이식은 이식받은 사람에게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설을 쓴 토마스 프라도(프랑스 소르본대 철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는 중요한 수단이며, 얼굴은 더 직접적으로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부위”라며 “얼굴과 같은 보이는 부위의 이식은 기능적 회복뿐 아니라 정체성 재정립에 성공했을 때만이 수술에 대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1998년 다른 사람의 손을 이식받은 뉴질랜드인 클린트 핼럼은 이식받은 손을 자기가 아닌 남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참지 못한 채 면역억제제 투여를 중지해버렸다. 그는 거부반응을 일으켰고 결국 다시 손을 잘라달라고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얼굴 이식이 오히려 손 이식보다 극복하기 쉬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손은 환자가 매일 봐야 하지만, 얼굴을 거울을 봐야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까지 이자벨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미 2월에 공개석상에 얼굴을 드러낼 정도로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의 수술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는 조건으로 그는 12억원의 계약금을 받기도 했다. 자살을 하려고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했던 미혼모 이자벨은 새 얼굴과 함께 말 그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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