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4기를 맞아 광역자치단체 정무부시장ㆍ지사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정계진출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소속정당과의 업무조정, 대(對)언론 업무 등을 맡아 ‘쉬어가는 자리’였으나 최근에는 경제, 문화, 환경, 개발사업 등 핵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실세로 바뀌고 있다.
경제관료ㆍCEO 출신 인기
정우택 신임 충북지사는 최근 정무부지사에 노화욱 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를 내정했다. 선거운동 당시 “정무부지사를 경제전문가로 임명하겠다”고 내건 약속을 지킨 것이다.
노 내정자는 1977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하이닉스 청주사업장 총괄 상무, 총괄 전무 등을 거쳐 현재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 자문위원으로 있다.
이병화 광주시 정무부시장은 ‘경제부시장’ 성공사례로 꼽힌다. 박광태 광주시장이 민선 3기 들어서면서 발탁한 이 부시장은 재정경제부 등에서 근무한 정통관료 출신으로 4년 동안 박 시장을 보좌해 기업유치와 해외투자 유치에 큰 성과를 올렸다. 주변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민선 4기에도 유임될 것으로 믿고 있다.
지난해 2월 전남도 정무부지사로 발탁된 이근경 부지사도 경제부지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시작, 공정거래위원회와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재정경제부 차관보까지 올랐던 이 부지사는 도가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 건설사업(J프로젝트)을 주도하고 있다.
경제살리기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김완주 전북지사는 이 달 중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공모할 계획이다. 후보로는 경제학자가 아닌 실물경제에 밝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선호하고 있다. 김 지사는 경제통상실을 정무부지사가 관장하도록 하는 등 ‘경제부지사’로서의 업무권한을 위임해 줄 방침이다.
인선 싸고 소속당과의 마찰
광역자치단체장들은 ‘특수임무’를 수행할 정무부시장ㆍ지사 자리에 적임자를 앉히기 위해 중앙당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고 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한나라당 울산시당이 5ㆍ31 지방선거 당시 시당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민선 구청장 출신의 인사를 천거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있다.
박 시장은 “울산의 위상을 높이고 중앙정부의 협조를 이끌어 내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열정과 비전을 가진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도 한나라당에서 당 인물을 정무부지사에 임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투자유치와 중앙정부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정계와 경제계에 폭 넓은 인맥을 가진 인물을 찾고 있다.
정책혼선 부작용 우려도
하지만 정무부시장ㆍ지사의 위상 강화에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다. 외부 전문가가 영입된 경우 공무원 조직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외부 인사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존 관행을 깨는 정책을 선호하지만 수십년 경력의 노회한 국ㆍ실장급 공무원들의 반발과 따돌림에 중도 하차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그동안 경제전문가, 혁신전문가 등이 영입됐지만 조직에 착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행정의 공백이 생기고 비용과 시간이 허비된 측면도 있다”며 “행정경험이 없는 외부 인사의 경우 현업 부서를 직접 관장케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장이나 지사가 정무직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주는 바람에 조직내 ‘눈치보기’를 조장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전문 정무부시장이 영입된 곳에는 지역경제정책이나 사업결정과 관련해 정무부시장과 공식 결재라인인 행정1부시장의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측근이거나 당선에 기여한 실세로 인식되는 정무부시장에 실질적인 행정권한까지 준다면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이 되는 것”이라며 “실무를 맡는 공무원들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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