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18> 토머스 제퍼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18> 토머스 제퍼슨

입력
2006.07.04 00:02
0 0

미국의 제3대 대통령(1801~1809)이자 ‘독립선언서’(1776)의 기초자. 13개 식민지 중의 하나였던 버지니아에서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법률을 공부해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제퍼슨은 버지니아 식민지의회 의원으로 활약하다가 버지니아의 대표로서 1775년과 1776년에 필라델피아의 대륙회의에 참가해서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그 후 그는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내다가 다시 1783년과 1784년에 대륙회의에 참가했으며, 벤자민 프랭클린의 뒤를 이어 프랑스 주재공사로 일을 하고, 조지 워싱턴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17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자로 부통령이 되었던 그는 1880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두 명의 연방파 대통령의 뒤를 이어 공화파인 제퍼슨이 당선된 것을 ‘1800년의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퍼슨식의 민주주의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최소한의 중앙 연방정부 및 가능한 한 인민에게 가까운 지방분권적인 자치 정부, 국가 기구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 강조, 언론과 출판의 자유 강조 등으로 요약된다. 제퍼슨의 공화파와 대립했던 연방파의 중심 인물은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튼이다.

해밀튼은 강력한 중앙 연방정부의 역할을 요구하는 동북부와 중부 해안지대에 기반을 둔 기업가와 금융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제정책을 수립, 집행하였다. 이에 대하여 제퍼슨 등의 공화파는 연방파의 정책이 소수 상공업자의 손에 부와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국민 다수의 이익과는 대립된다고 비판하였다.

공화파는 남부와 서부의 반연방주의적이고 주권(州權) 중심적인 농업 세력과 채무자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죽었는데 그 스스로가 미리 준비한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 미국 독립선언서 및 버지니아 종교 자유 법령의 저자,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묻히다”

이재현(이하 현) 미스터 프레지던트,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한 때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캐나다나 호주와 같은 경로를 밟지 않고 굳이 독립전쟁을 하게 된 배경은 뭔가요?

제퍼슨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겠지만, 당시 독립전쟁에 반대한 미국인들도 많았다네. 당시 미국 내의 소위 왕당파(Tories)는 크게는 50만명 정도로 오늘날 추산되는데 아메리카 식민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수였어. 그 중에 2만여 명 가까이는 영국이 공급한 무기를 들고 영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지.

오늘날 표준 미국사에서 1763년에서 1789년에 이르는 시기를 ‘미국 혁명’(The American Revolution) 이라고 부르고 있네만, 결국 미국혁명은 한편으로 독립전쟁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내전이었다네. 왕당파 역시 설탕법이나 인지조례 등과 같은 영국의 강압적인 경제 정책을 비판하고는 있었지만, 폭력적 봉기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평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할 것이라고 두려워 했어. 또 독립을 하게 되면 영국의 중상주의 경제 체제의 일부로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상실할 것이라고 염려 했지.

현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제퍼슨 내 말은 한편으로는 미국 독립전쟁과 관련해서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집단이 대립하고 있었다는 거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미국혁명의 발생과 성공에 직접적으로 작용했다는 거야.

현 미국은 식민지 시절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자치를 이룩하고 있었지요?

제퍼슨 게다가 13개의 식민지들은 서로 다른 종교적, 사회경제적 배경을 갖고 있었지.

현 그러면, 어떻게 해서 급진적인 분파가 보수적인 분파를 누르고 대륙회의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나요?

제퍼슨 사상적으로는 토마스 페인의 ‘상식’의 영향이 컸는데 전제군주제를 아주 강력하게 비판하는 팸플릿이었지. 50쪽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3개월 동안에 10만부가 팔렸지.

현 저희들도 1980년대에 팸플릿을 많이 읽었지요. 팸플릿 세대의 상당수가 정치인도 되고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도 하고 있구요. 당시의 팸플릿은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홈페이지라든가 블로그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퍼슨 전반적으로 영국 쪽에서 취한 강압적 대응이 문제였지. 영국 쪽에서 유화적으로 나왔더라면 급진파가 헤게모니를 잡지는 못 했을텐데…. 필라델피아와 뉴욕의 상인들과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영국과의 수출입이 중요한 경제적 활동이었기 때문에 무장 봉기를 선호하지 않았지. 그런데 영국이 인디언과 흑인 노예들을 자기 편에 서도록 군사적으로 선동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독립에 미온적이던 농장주들로 하여금 전쟁을 택하도록 만들었어. 게다가 영국의 팽창을 우려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미국 독립에 @퓽岵潔解?말이야. 또 대륙회의 안의 보수파가 낸 타협안을 영국이 받아들였더라면 미국 혁명은 없었을 거야.

현 그렇다면 미국 혁명은 남북 전쟁과 마찬가지로 양키들의 승리란 얘기입니까?

제퍼슨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13개의 식민지가 종교ㆍ문화적으로, 또 사회ㆍ경제적으로 서로 입장이 달랐다는 거야. 미합중국 정부가 1789년에 출범하기 훨씬 전인 1776년 무렵부터 각 주(state)는 독립 정부와 주 헌법을 갖기 시작했어. 미합중국은 1787년에 소집된 제헌의회에서 만든 헌법을 13개의 각 주가 비준해냄으로써 만들어진 연방국가야. 그러니, state를 단지 ‘주’라고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각각의 state는 1789년 이전에는 엄연히 독립된 국가들이었고 지금도 다분히 그렇지. 내가 살던 버지니아는 열 번째로 헌법을 비준하게 되었는데 우리 버지니아에서는 많은 이가 연방헌법 안에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없다는 걸 이유로 해서 헌법 초안의 비준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지.

현 권리장전이란 애당초 영국에서 명예혁명과 더불어 생겨난 거지요? 의회의 입법권과 과세권,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퍼슨 미국에서는 1776년의 버지니아 주의 권리장전이 유명하지. 나중에 1791년에 가서야 권리장전이 미합중국 헌법에 부가되었는데 이게 바로 ‘수정 헌법’이라고 오늘날 불리는 거야.

현 연방 정부와 주 정부, 혹은 연방 정부와 국민의 정치적 관계는 미합중국의 출범 때부터 문제였군요?

제퍼슨 그게 바로 소위 남북전쟁의 핵심적 사안이었어. 그에 비하면 노예 해방의 문제는 부차적이었던 거지. 표준 역사 교과서에서는 남북전쟁을 The Civil War,그러니까 시민전쟁 내지는 내전이라고 부르지만 지금도 남부 사람들 중에는 ‘양키 연방주의자들의 일방적인 침략’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아.

현 권리장전 문제 말고, 헌법 비준에 반대한 사람들이 문제 삼은 다른 것이 있었나요?

제퍼슨 그건 연방의 통상 규제권이야. 연방파는 연방정부가 강력한 통상 규제력을 갖도록 요구했었는데 나 같은 반연방주의자 내지는 공화파가 보기에 그것은 북부의 상공업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이었지. 뉴욕주에서도 헌법의 비준 반대가 심했고 로드 아일랜드는 1790년에 가서야 비준을 했지.

현 미국 연방정부는 1816년부터 미국의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35%에서 4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기 시작해서 적어도 1920년대까지 계속해서 강력한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시행했었는데요.

제퍼슨 그러니까 자네는 미국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주의 방침이라는 게 허구라는 걸 강조하려는 거로구만. 또 한미FTA 주창자들이 역사적으로 무지몽매하다는 얘기고 말이야.

현 네에….

제퍼슨 미국 안에서도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아.

현 한국에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답니다. 특히 국방부,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의 고급 관료들 상당수의 사고방식이 그러하지요. 미국의 ‘수퍼 파워’를 현실로서 인정한다는 것과 거기에 순응해버리고 만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인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제퍼슨 으음…, 그러니까…, 대통령이란 상품은 환불, 반품, 교환이 안 되는 거니까 처음에 정치 시장에서 고를 때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걸 한국 국민들께 꼭 당부드리고 싶구먼.

문화비평가 이재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