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국부로 추앙 받는 호치민(胡志明)은 검소와 청렴으로 유명하다. 전쟁 중 정글에서 몸에 밴 검소한 생활은 북베트남의 주석 자리에 오른 뒤에도 여전했다. 그의 거처는 조그만 오두막이었고 늘 같은 옷에 고무 샌들을 신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는 30여년 동안 망명과 투옥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서로 소식조차 모르고 살았다.
주석이 된 뒤 누이를 딱 한번 만났을 뿐 그 뒤 죽을 때까지 인연을 끊고 지냈다고 한다. 항상 나라의 일을 먼저 걱정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복을 즐긴다는 신조를 철저히 실천한 것이다.
▦ 베트남 국민들은 그런 그를 절대적으로 존경했지만 우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호(胡) 아저씨로 부르며 친근하게 여겼을 뿐이다. 그는 유언장에서 당원들에게 단결을 간절히 호소하는 한편 당 내부에서 상호 비판과 채찍질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베트남 공산당은 호치민의 이러한 유지를 받들어 한 개인의 절대적 권한을 허용하지 않았고 과오가 있는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전통을 확립했다. 베트남공산당이 1986년 제6차 당 대회에서 도이머이(쇄신)를 내걸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간 것도 이러한 전통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 최근 베트남 정부와 당 지도부에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쩐득르엉(69) 국가주석, 판반카이(72) 총리, 응웬반안(68) 국회의장 등 3명의 고위 지도자가 임기가 남았는데도 스스로 물러났다. 4월 제 10차 공산당전당대회에서 65세 이상 지도자들은 스스로 은퇴키로 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후임 주석과 총리에는 각각 응웬밍찌엣(64) 호치민시 당서기, 응웬떤중(56) 수석부총리 등 남부출신의 개혁파가 임명되었다. 당원들의 사업 허용과 사업가들의 공산당도 입당도 가능하도록 당헌도 개정했다. 개혁개방 가속화를 위한 조치다.
▦ 엊그제 북한은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한 ‘7ㆍ1경제관리개선조치’ 실시 4주년을 맞았다. 당초 이 조치를 계기로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가고 있다. 장사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등 주민들 사이에 시장 마인드가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급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극심한 인플레 등의 부작용이 많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세대교체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수령유일영도체제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세대교체를 동반하지 않는 개혁은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계성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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