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즈음하여 고등교육시장 개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한쪽에서는 교육의 시장화 반대를 기치로 개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다른 쪽에서는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개방을 적극 옹호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들 두 가지 대립하는 주장과 논리는 전혀 현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다.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 같지만 양측 모두가 허깨비를 붙들고 우스꽝스런 씨름을 벌이는 양상이다.
우선 주로 경제계, 경제부처에서 나오는 개방론의 허구성을 지적해본다. 이들은 닫힌 문만 열어놓으면 외국의 유수 대학이 자본을 들고 와 국내의 토지 건물에 투자하고 대학을 개설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결정적 착각이다.
외국대학이 이러한 방식으로 국내 진입할 가능성은 제로이다. 대학은 직접적 자본투자 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분야이다. 만일 진출한다면 그 가장 적합한 방식은 프랜차이징이지만 뛰어난 질 관리 시스템을 갖춘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도 그 채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외국 대학이 국내 진출하는 것도 상당한 훗날의 가능성일 따름이다.
이렇게 보면 개방 반대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온 또 다른 진영 역시 그동안 '외국대학의 국내 진출'이라는 허깨비와 씨름해온 것에 불과하다. 이런 우스운 모습이 야기된 원인은 양측 모두가 제조업이나 유통 금융 등 재화를 다루는 부문의 범세계적 경제활동 양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형적 서비스 분야의 세계화에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서비스 부문의 세계화는 이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 분야의 세계화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고등교육시장 개방 반대론의 실질적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특정 외국대학의 국내 진출이라는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반대론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시장화' 논리 자체에 대한 이념적 반대라는 점에 있다.
이 문제는 학계나 정책현장에서 지속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고등교육 문제가 다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서비스 무역협상 테이블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찬반 논쟁은 해외에서 이를 본다면 그야말로 우스꽝스런 모습일 것이며, 이를 한국과의 협상에서 써먹을 수 있는 호재로 여길 것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우루과이 라운드 이래 서비스 무역협상 테이블에서 교육 문제가 다루어져온 것은 엄연히 사실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그들도 허깨비와 씨름해 왔기에 교육 부문에서는 아무런 타협점에도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이 분야에서 직접 씨름해본 사람들은 이제는 알고 있다. 교육서비스 무역협상이란 허깨비이며,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고등교육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자본비용을 들여 외국대학을 국내에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 관심조차 없는 외국대학에 대한 국내 교육시장 개방 조치는 더더욱 아니다. 외국 우수대학의 노하우를 배우려면, 그들 대학경영 전문가나 교수진이 국내 대학에 와서 근무하면서 시스템과 경영기술을 이전해주는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국내 대학들은 외국대학과 협약을 체결하여 공동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이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기술료 또는 브랜드 사용료를 지출하고 있지만 이는 무역협상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정기오ㆍ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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