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나무에서 사람이 열린다는 와크와크족의 땅, 기독교 이슬람교가 말하는 ‘심판의 날’에 사탄의 세력으로 등장한다는 종족 ‘곡’과 ‘마곡’의 영토. ‘비천한 땅’ 지구 위 우주에는 빛과 음악으로 가득찬 하늘이 겹겹이 쌓여 있다.
중세 유럽과 중동의 천문도와 지도의 모습은 이랬다. 지금 보면 과학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은 엉터리 종이 뭉치들이다. 신화와 전설, 상상과 비이성이 어우러진 중세의 천문도, 지도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섭스레기일 뿐일까.
영국 옥스퍼드대 동양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도 전문가인 저자들은 중세의 시각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고 얘기한다. 중세인들이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 우주나 지구의 지형을 정확하게 모사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가 상대적으로 실용적이었지만 어쨌든 종교적, 역사적 의미를 담기 위해 하늘과 땅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세의 세계관이었다.
근대 이후 천문도와 지도에는 조그마한 변화라도 바로 반영됐지만, 중세의 그것은 역사와 종교의 주요 사건이 현실과 관계없이 표시되는 ‘정지된 과거의 시간’이었다. 때문에 어딘지 모르는 에덴동산이나, 멸망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트로이, 소돔과 고모라, 바벨탑 등이 지도의 한 자리를 버젓이 차지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중동의 천문지리를 더듬는 계보학이다. 특히 60여장의 귀한 천문도와 지도는 흔히 접하기 힘든 것들이어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저자들은 “근대적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중세의 신비하고 아름답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와 그 즐거움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안준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