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하진(50)은 우리에게 낯선 작가다.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려던 차에 터진 톈안먼 사태에 질려 눌러앉았고, 모국어 대신 영어로 소설을 써서 ‘펜/포크너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두 차례 오르며 미국 문단의 주목을 끈 이력의 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이 첫 선을 보였다. 작품집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왕은철 번역, 현대문학, 9,000원)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근ㆍ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념, 관료주의, 혁명과 문화혁명, 봉건 구습, 돈, 권력, 성의 욕망, 인간성 등이 그의 작품을 형성하는 두드러진, 하지만 당대 중국 작가들의 소설에서 그다지 낯설지 않은, 재료들이다.
하진의 소설이 도드라져보이는 것은 그가 ‘이야기’를 잇고 매듭을 지어가는 경쾌한 방식이다. 그의 작품들 마다에는 각각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동네 암퇘지의 교미를 둘러싼 토종 흑돼지와 서양 흰돼지의 난투극을 그린 ‘주권’, 한국인 노인이 그의 생일 잔칫날 젊은 인민군들과 벌이는 해프닝을 담은 표제작, 경찰과 지식인의 대립을 그린 ‘사보타주’, 이데올로기에 희생되는 동성애자의 문제를 그린 ‘신랑’, 성의 위선과 일탈에 대한 야만적 이중성을 이야기한 ‘백주 대낮에’…. 9편의 길지 않은 작품들은 하나하나 그 같은 중국 사회 일상의 단면들을 품고 있다.
그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삶에 훈수를 두지 않는다. 세상과 삶을 해석하거나 진단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현상을, 일상의 사건들을, 스냅사진처럼 술술 이으며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나아간다. 손목에 힘 준 흔적 없이 시종 구수하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해학이 있으나 과장되지 않고, 풍자가 있지만 그마저 일상적이다. 빈번히 등장하는 ‘씹’ ‘개년’ 따위의 어휘조차 가(피)학의 작위성의 찌꺼기 없이 그 일상 속에 스며든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의 이야기와 닮은, 우리가 알고 또 겪은 수 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되씹어보게 한다. 실존과 타자, 사회와 국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싱거운 듯 능란하고 어눌한 듯 노회한 그의 솜씨가 다른 작품들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이르면 가을쯤, 시공사에서 장편 ‘기다림’(Waiting) ‘전쟁쓰레기’(War Trash) ‘광인’(The Crazed) 등이 잇달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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