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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신데렐라? 언제적 얘기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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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신데렐라? 언제적 얘기 하니'

입력
2006.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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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TV 인터넷 휴대폰의 그것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호환 마마 전쟁 보다는 - 강력하다. 동화는 여전히 어린 시절 ‘세상과 나’를 비춰주는 몇 안 되는 창(窓) 중의 하나이다.

국내 아동문학 작가 여섯 명이 유명 동화 하나씩을 골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동화집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껏 아이들에게 보여주던 세상의 반대편을 향해 새 창을 낸 신선한 시도이다. 이 책에서 작가들은 백설공주 콩쥐팥쥐 신데렐라 등 ‘클래식 동화’들을 과감히 비틀고, 꼬집고, 뒤집으며 다시 써내려 간다.

예컨대, 백설공주가 결혼해서 낳은 아이는 온몸이 새까만 흑설공주가 되고, 흑설공주를 죽이려고 ‘사과장수 할멈’으로 분했던 계모 왕비는 ‘헌책장수 할아범(!)’이 되어 등장한다. (첫 번째 작품 ‘흑설공주’)

응당 콩쥐를 미워하고 괴롭혀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팥쥐가, 두 번째 작품 ‘팥쥐랑 콩쥐가’ 에서는, 콩쥐를 피를 나눈 자매처럼 살갑게 대한다. 심지어 콩쥐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구원자로 나서기도 한다. 결국 콩쥐와 팥쥐는, 그들에게 순순히 길을 내주지 않는 세상에 맞서, ‘델마와 루이스’처럼 함께 손잡고 길을 떠난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신데렐라라고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계모와 언니, 호박마차, 12시 통금은 그대로지만, 마법사와 왕자님에 기대어 인생 한번 쉽게 살아보려 했던 과거의 신데렐라는 스스로 내 갈 길 개척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거듭난다. 신(新)데렐라 스스로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깨 버리는 아이러니다. (세 번째 작품 ‘유리구두를 벗어버린 신데렐라’)

나머지 세 편도 이런 식으로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삐딱하게 시작한 이 패러디 작업은 삐딱한 결말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함에 대한 의도적 해체 작업을 통해 ‘수백 년 묵은’ 동화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인종적 편견이나 성차별과 같은 배타적 고정관념을 날카롭게 도려내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나 상황 설정만을 차용해 ‘지금 여기’에 걸맞은 가치관을 구현해 가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써내려 가는 작업인 셈이다.

언뜻, 이 ‘패러디 동화집’은 적어도 해당 동화 ‘원전’을 다 뗀 아이들에게 적당할 성 싶기도 하다. 이런 패러디를 원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또한 곤란한 일일 테니까.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딸이 다른 집 아들들과 당당하게 맞서길 기대한다면, 이런 ‘선수 학습’은 생략해도 무방할 것이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도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다음 세대를 기약하고자 한다면, 패러디를 원전으로 착각하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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