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킬러들의 발끝에 달렸다. 축구는 단순하지만 비합리적인 게임. 골을 넣으면 이기지만, 경기를 지배하고도 질 수 있는 것이 축구다. 볼 점유율도, 패스 정확도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 단 한번의 찬스에 골 망을 흔들 수 있으면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다.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서는 ‘원 샷, 원 킬’의 미션을 수행할 스트라이커의 비중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변을 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킬러가 없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세계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하던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몰락과 무실점 행진을 벌이던 스위스의 8강 탈락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한국도 대형 스트라이커 부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최강의 테크니션들로 무장한 멕시코는 허리싸움에서는 이기고도 정작 골 싸움에 져 16강에 만족해야 했고, 히딩크 매직를 가로막은 것도 킬러 부재였다.
반면 셰브첸코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를 가진 우크라이나는 월드컵에 첫 진출해 8강에 오르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셰브첸코는 그 존재만으로도 상대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는 숨막히는 빗장수비를 펼치면서도 단 한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는 탁월한 킬러들을 보유해 8강까지 올랐다.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까지 ‘녹슨 전차’로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던 독일은 고공 폭격기 클로제의 골 퍼레이드로 승승장구 했고,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도 ‘호나우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굳이 골을 넣을 필요도 없다. 확실한 킬러들은 두 세 명의 수비수들을 달고 다니며 동료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둘이면 금상첨화다. 에르난 크레스포, 하비에르 사비올라, 칼를로스 테베스, 리오넬 메시 등 골잡이들을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킬러들의 합창’으로 우승을 향한 겁 없는 질주를 계속해왔다. 녹다운 방식의 단판승부로 진행되는 결승 토너먼트. 결국 ‘보다 더 치명적인 킬러’를 보유한 팀이 시상대 맨 꼭대기에서 우승컵에 입맞춤할 것이 틀림없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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