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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인간은 왜 악당이 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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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인간은 왜 악당이 될 수 없는가

입력
2006.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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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차력사와 아코디언’에서 극작가 장우재는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약장수의 음성을 빌어 이같이 물었다. 같은 작가의 최근 발표작 ‘악당의 조건’에서는 질문을 달리 한다.

“인간은 왜 악당이 될 수 없는가?”

밑천도 일거리도 없는 백수 태식과 걸은 입, 술집 이력 밖엔 가진 게 없는 영희는 사랑하고 결혼해 살림을 차린다. ‘한심한 놈과 꼬인 년’의 동거는 자꾸만 궁색해지고, 고향 친구인 사채업자 길남에게서 고리채만 잔뜩 떠안는다.

그래서 태식(윤영걸 역)은 십대 시절 빠져있던 영화 ‘영웅본색’ 속 킬러를 몽상함으로써 자신의 비관적 처지에 거리를 두려한다. 연극은 삶을 놓아버리려는 태식에게 일거리를 주려고 자신을 살인하기를 청부하는 영희(김지성 역)의 사랑을 담담하게 비춘다. 그리고 결국 총기 암거래상 심부름꾼 종길이 거짓 장전해 준 공포탄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살아 남는 것으로 반전을 꾀한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스무 개 남짓한 장면으로 구성된 이 연극은 암전과 암전 사이의 행간을 관객이 적극 상상하고 채우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연출가 김광보는 철망 칸막이를 사용해 소시민적 삶의 익명성을 표출하고, 등장 인물이 처한 삶의 뒷길과 겹치고, 갈라지고, 먼 길을 에도는 인생 행로를 적절히 표현해낸다. 대도구, 소도구들을 관객이 눈 번히 뜨고 있는 앞에서 교체하면서 공간 전환 등을 자신감 있게 몰아친 극장주의적 접근 방식은 극에 미묘한 리듬과 서정을 제공한다.

연극은 인류 역사에서 사람살이를 움직이는 이면, 그 뒤에 숨은 ‘배후의 힘’을 정의해 왔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운명이었고, 중세인에게는 우주의 운행 질서였으며, 르네상스인에게는 개성이었던 그것. 19세기에는 환경과 유전이 우리 배후에 숨은 힘이더니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를 정의하고자 하는 것조차 부질없어 부조리함으로 뭉뚱그려 유희했다. 오늘날 21세기의 연극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도로 포장 아래 온기를 놓치고 있는 우리 삶의 망가진 텃밭을 돌아봄으로써 그 혼돈의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악행조차 저지를 수 없는 소시민의 도덕적 자기 위안에 그치고 말지도 모를 ‘악당의 조건’. 그러나 인간을 악당이 될 수 없게 하는 것은 사랑과 타인의 처지에 관한 연민 때문이라고, 그것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되뇌는 이 만고의 진리 앞에서 누가 딴지 걸 수 있겠는가. 7월 9일까지,

소극장 축제.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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