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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전쟁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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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전쟁이 끝나고

입력
2006.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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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나간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함성이 잠잠해질 터이니 반가운 일이다. 그 전에 정치의 계절도 있었다. 축구에 온통 가려 있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불과 한 달 전 지방선거라는 게 있었다.

선거와 축구는 전쟁이었다. 하나는 내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제전이었을 것이다. 연이어 치른 전쟁에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이제 전쟁이 끝나가고 아직 귓가에 함성이 사그라들지 않았음에도 이명처럼 들리던 말이 있었다. 내전 때의 일이다.

● 내전이었던 지방선거

지금이야 예전처럼 사랑방에 모여 콩이야 팥이야 정치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광경을 보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삼삼오오 모이면 선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지나는 길에 흘려듣다가 사람들에게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말버릇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이나 군수 등 이른 바 공직자들의 자리를 놓고 꼭 '해먹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 양반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해먹은 사람이야'라거나 '그 친구 도지사는 너끈히 해먹을 거야'라는 식이다.

'선거는 끝났고, 시장이나 도지사, 시의원들은 이제 한 자리 해먹을 것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를 두고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오랜 관습으로부터 공직의 자리를 위한 선거가 이권을 챙기기 위한 다툼이었던 기억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는 표현 아니 숨겨진 논리가 하나 더 있다. 무슨 리서치 같은 데서 조사한 바가 없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되, 인물을 선택하면서 '아무래도 한 번이라도 해먹은 사람이 낫다. 그런 사람이 우리 것을 덜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 바뀐 놈은 더 해먹으려 들 것'이라는 원초적 불신이 깔려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여당이 지리멸렬한 까닭이 애초부터 기존에 해먹었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설프게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런 시각이 '풀뿌리 보수' 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민의는 참 이상한 경로로 표출된다. 분명히 서민을 더 착취하는 정책을 기조로 하는 정당을 서민들이 지지하고, 농촌을 망해먹은 대통령을 농민들이 잊지 못해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을 노동자가 외면하는 현상이다. 스스로 기득권층에 있지도 않고 그들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서슴없이 보수에 표를 던진다.

● 한 번 '해먹은' 사람이 낫다?

민의를 대변한다고 말하는 정당은 오히려 정반대의 민의를 가진 자로부터 선택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진정한' 보수를 좌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득권층이나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매우 오랫동안 지배계층이나 기득권층에게 절망하거나 체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지 한자리 '해먹는' 사람들이 '더 크게 해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해먹었던 사람이 덜 가져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자리를 내어준다. 물론 우리의 대의민주주의가 이런 섬뜩할 정도로 솔직한 민의만으로 좌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본다. 전쟁을 치른 뒤 뜬금없이 드는 생각이다.

김진송 목수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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