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29일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특별 설치한 군사위원회에서 재판해 온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조치를 불법이라고 판결, 관타나모 수용소 자체의 폐쇄 여부가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법원 판결은 테러 혐의자들을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내 수용소에 억류한 사실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460여명이 억류돼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는 일단 형식적으로는 유지가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대법원의 결정이 테러 용의자 석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나는 이들이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대법원의 결정을 분석할 것이며 군사법정을 이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의회와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새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군사법정에 세우겠다는 뜻이고 당연히 관타나모 수용소의 유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자의적으로 설치한 군사위원회가 아닌 통상적 군사법원, 또는 일반 연방법원에서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재판해야 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도 부시 대통령이 이 같은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내포된 정치ㆍ사회적, 법적 파장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재촉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자의적으로 확장해온 것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판단,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체포한 테러 혐의자들을 기소도 하지 않은 채 무기한 관타나모 수용소에 억류하고 있는 조치는 이처럼 잘못 확장된 대통령 권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또 대법원이 군사위원회를 통한 테러 혐의자 재판은 미국 군법 뿐만 아니라 전쟁 포로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적 전투원’으로 분류, 제네바 협정의 적용을 배제해 온 부시 행정부 조치에 직ㆍ간접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다.
관타나모 수감자 관련 사건에 대해 연방법원의 재판관할권을 부정해온 부시 행정부의 방침을 대법원이 명백히 거부한 것도 폭발성을 안고 있다. 이번 판결은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운전사 출신인 살림 아흐메드 함단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개별 소송에 대한 판단이었지만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요구해온 국제 인권단체 및 유럽 지도자들의 압박이 한층 강화될 것도 분명하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