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에 대한 프랑스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과학, 기술, 문명이 인간의 순수를 타락시켰다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그의 주장에 많은 프랑스인이 매료됐다. 그렇다면 우리 눈으로 보면 어떨까. 루소의 문명비판론은, 서양인에게는 독창적인 발견일지 모르지만, 동양의 전통에서 보면 평범한 상식의 하나이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동양의 정신적 원류, 노자의 무위자연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 콘서트’에는 동서양의 대표 현인 10명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저자는 황지우 시인의 동생으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진리는 나의 빛’ 등을 썼고 지금은 광주에서 제자들과 고전을 공부하고 있다.
저자는 동서양 사상가를 다루되 우리 시각으로 접근하려 했다. 국가 수립의 토대를 생필품을 생산하는 인간 노동에서 찾은 플라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그렇다. 저자는 플라톤의 생각을 확장해, 서양인에게 선(善)은 좋은(good)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반면 동양인에게 선은 착한 행위이다. 플라톤 철학에 자주 나오는 덕(德)은 좋은 물건을 만드는 장인의 기예이다. 동양의 덕이 어진 마음의 정치적 구현인 것과 대조적이다.
저자는 책에서 철학자의 사상보다 삶에 주목했다. 삶을 이해하면 그들의 관점이 보여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자의 ‘논어’를 읽기 전에 그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안다면,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을 알기 전에 그가 독배를 든 이유를 안다면, 플라톤의 ‘국가’를 접하기 전에 스승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그의 눈물겨운 사랑을 안다면,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윤정 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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