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새 스크린쿼터 시행령이 7월1일부터 적용된다. 1월26일 정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사전 조치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 한지 5개월 만이다.
고조되는 위기감
정책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고 일각에서 투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목청은 여전히 높다.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1일 대학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영화인 1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그러나 쿼터 축소가 현실화 하면서 영화인들은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5월3일 ‘미션 임파서블3’가 개봉한 이래 ‘다빈치 코드’ ‘포세이돈’ ‘엑스맨:최후의 전쟁’ 등이 바통을 주고 받으며 할리우드 영화가 8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이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동통신사의 영화 티켓 할인 중단이라는 악재도 등장해 영화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중급 영화 설자리 좁아져
많은 영화인들은 단기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가 큰 타격을 가져오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해 충무로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왕의 남자’ 같은 빅 히트작 하나만 나와도 극장들이 의무상영 일수 73일을 채울 수 있기에 한국영화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곽신애 LJ필름 이사는 “1,000만 관객이 찾아온 영화 한 편보다 300만 관객 영화 네 편이 영화산업에 더 이롭다. 그러나 쿼터가 축소되면서 그럴 가능성이 많이 줄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화인들은 또 블록버스터 영화에 돈과 인력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확대 될 수 밖에 없고, 순 제작비 40억원 이하의 중급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재명 MK픽처스 사장은 “스크린쿼터 축소로 한국영화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작은 규모의 영화는 극장의 선택을 받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마케팅 전쟁 치열해질 듯
의무상영 일수가 줄어든 만큼 대규모 마케팅에 힘입어 단기간에 흥행 승부를 거는 경향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전국 540개 스크린을 장악하며 개봉 첫 주에 180만 관객을 쓸어모았던 ‘태풍’의 마케팅 모델이 주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사 상장 붐을 타고 15년만에 제작편수가 100편을 넘어선 것도 마케팅 전쟁을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개봉 3, 4일만에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려는 마케팅 총력전 구도가 형성 될 것이다. 뒤늦게 입 소문으로 흥행몰이를 하는 영화는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재명 사장도 “관객의 주목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마케팅비가 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케팅이 득세하면서 영화 내용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중의 시선을 금방 낚아챌 수 있는 소재의 영화가 늘고 소수의 시각을 담아낸 도전적인 영화 제작이 줄면서 관객의 선택의 폭도 덩달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진씨는 “예전엔 대작들도 모험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도 이젠 많이 움츠러들 것”이라고 밝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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