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학년 때 납북됐다 28년 만에 어머니와 누나를 상봉한 김영남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납북된 것이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북한에 간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선유도 해수욕장 부근에서 북한 공작선에 의해 납북됐다고 알려진 바와는 크게 달라 당혹감을 준다. 북한 당국의 작용 때문에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면 모자상봉을 계기로 납북자 문제 해결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어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 정황을 들어가며 설명한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그의 말처럼 납북이 아니라 ‘돌발적 입북’을 한 것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전남 홍도 등지에서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고교생 4명도 우연히 가게 되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북한은 김씨와 결혼한 요코다 메구미씨 등 상당수 일본인들의 납치사실을 이미 인정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씨도 특정한 목적 하에 납치해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김씨가 우연히 북한에 간 것이라는 점과 북의 호의를 강조한 데에는 북한 당국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교육도 잘 받았고 당의 품에 안겨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그런 심증을 더욱 굳게 한다.
북측은 이번 상봉에 유난히 적극성을 보였는데 뭔가 정치적 의도가 없고서야 그런 호의를 보였을 리 만무하다. 김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한 전처 요코다 메구미씨 문제를 놓고 일본측이 집요하게 따지고 추궁하는 데 대해 이번 행사를 통해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억지주장을 계속하면 남북경협 등 다른 분야의 협력과 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측은 체제경쟁과 이념대결의 시대에 저지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미귀환 납북자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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