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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모자 상봉, 日에 한망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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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모자 상봉, 日에 한망 먹였다

입력
2006.06.2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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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母子)는 온 국민을 울렸다. 그들의 눈물 속에 담겨 있는 뜨거운 감격을, 지난 날의 회한을 국민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28년 만에 볼을 맞부빌 때 모자가 느꼈을 경이로운 감촉도 사람들은 함께 했다. 28일 오후 3시 TV를 통해 흘러나온 최계월(82) 김영남(45)씨 모자의 상봉 모습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우익들이다.

상봉 얘기가 한창 오가던 지난달 최씨와 김씨의 누나 영자(48)씨가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니가타(新潟)현 지사와 식사를 하면서 영자씨가 "동생을 반드시 만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인 통역자는 "사돈(납북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통역했다.

나중에 영자씨가 화를 내자 통역자는 "'납북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구조회)가 그렇게 시켰다"고 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일본 우익인사들이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구조회는 노골적으로 "가면 안 된다"고 최씨와 영자씨를 압박했다.

일본 정부는 메구미가 자살했다는 북한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 북한이 보내온 메구미의 유골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북한이 메구미를 포함한 납북 일본인의 생사를 솔직히 밝히고 생존자를 송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가 어머니를 만나 "메구미는 죽었다"고 말하면 일본인 납치 문제가 그냥 봉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구조회의 논리였다. 실제로 김씨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구조회로 대변되는 일본 우익이 모자 상봉과 김씨 발언을 통해 납치 문제가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상황을 우려하는 이유는 납북 일본인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 우익이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온 이슈가 사라져 가는 데 대한 우려다. 메구미 문제도 자살의 실체적 진실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계속 논란거리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보면 일본 우익은 자신의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최씨와 김씨를 영원히 갈라놓으려고 했던 셈이다.

"납북 일본인의 궁극적인 인권 회복(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북한의 이벤트인 모자 상봉에 반대했다"는 일본 우익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납북 일본인의 인권을 위해 최씨와 김씨가 상봉할 권리(이는 감성적으로는 천륜이고, 이성적으로는 천부인권이다)는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조회의 허술한 논리를 대부분의 일본 언론이 받아들였다. 심지어 국내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이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씨와 영자씨가 김씨를 만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가 상봉을 강력히 지원한 것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영자씨와 최 대표가 상봉 사흘 전인 25일 "앞으로 구조회나 일본 언론과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번 상봉에 북한의 책략이 개입돼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국제적인 여론에 굴복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납북자 문제, 일본이 납치 문제라고 부르는 엄청난 사안을 해결하려면 이런 조그만 '굴복'이 여러 겹 겹쳐져야 한다.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다고 북한의 양보를 모두 거부하고 폄하하면 앞으로 이룰 것이 없다.

이은호 사회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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