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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죽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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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죽은 뒤

입력
2006.06.2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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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물러가고 있다. 민선 4기 지방자치가 7월 1일 시작됨에 따라 임기를 마친 단체장들이 자리를 내 주고 있고, 축구대표팀 감독은 바통을 넘긴 뒤 한국을 떠나갔다. 서울대 총장도 7월 19일 임기가 끝난다.

8월말이면 또 수많은 교원들이 정년퇴직으로 교단을 떠날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는 2008년 7월에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두번째 부자인 투자전문가 워런 버핏은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부부의 재단 등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러나는 것의 의미와 사회에 대한 기여 따위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다.

● 물러가는 사람들의 여러 뒷모습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워런 버핏의 기부행위다.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며 미국에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앤드루 카네기는 “죽은 뒤에도 부자인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말했었다. 버핏도 명언을 남겼다. “거대한 부를 세습하는 것은 경기장의 균형을 깨는 일”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그 말에 박수를 쳤다.

죽은 뒤의 일이 뭐가 중요할까? 고교 교과서에 실렸던 ‘페이터의 산문’의 어느 대목에는 ‘사후의 명성에 연연하는 것은 자신보다 먼저 이 지상을 다녀간 사람들의 칭찬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질없는 일’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은 한 번만 죽고 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물학적 죽음만 죽음이 아니며 사회적 죽음은 더 의미가 크고 깊다. 판단착오와 잘못된 처신으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삶과 행동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물러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남기거나 물려 주려 한다. 정치인은 노선과 파벌, 학자라면 학문적 업적과 학맥을 남기고 싶어 한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와 경영권을 물려 주려 한다. 버핏이 놀라운 점은 그런 욕심을 내지 않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ㆍ능력위주 사회)에 대한 믿음에 자녀들을 내맡긴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장과정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교육과 충분한 혜택을 받았다는 게 버핏의 생각이다.

한국 기업인들은 기업의 책무와 이윤의 사회환원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실제 행동은 다르다. 그런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상속세에 대한 주장인데,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경영권 편법 승계가 처벌 받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거세진 상태다. 한국은 상속세를 제대로 내겠다는 발표가 아직도 큰 뉴스가 되는 사회다.

상속세 폐지론자들은 한 세기 만에 이 세금을 폐지하려 하고 있는 미국이나 다른 외국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버핏과 조지 소로스 등이 반대하고 있지만, 소로스는 이미 별도 재단을 만들어 법망을 빠져나갔고 버핏은 상속세를 못 내 매물로 내놓은 기업을 사들여 돈을 벌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예를 들어 우리도 폐지하자고 외치는 것은 잘못이다. 상속세 폐지나 인하가 글로벌한 경향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경영권 승계에 관한 글로벌한 추세부터 따져 봐야 한다. 경영권 승계에 관해서는 전근대적인 생각을 고수하면서 세금문제에만 세계화를 외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버핏의 말을 다시 빌리면 “상속세 철폐는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자녀들로 2020년 올림픽 팀을 뽑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금 상속세 폐지는 어불성설이며 시기상조다.

● 유산보다 성과로 말하는 사회를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관한 인식이다. 유산보다 성과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옳다면, 그 생각에 맞춰 제도를 확립하고 운용해야 한다. 누구든지 개인은 인격적으로 완성되어 죽고 그 죽음이 좋은 유산으로 상속되게 해야 한다. 어느 단계에서든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은 죽은 뒤의 일을 생각할 일이다. 사람은 한 번만 죽는 게 아닌 것 같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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