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실 전우들의 눈이 공격목표를 지시하는 작전참모의 지휘봉에 집중됐다. 지휘봉은 ○○지점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더니 힘차게 (점을) 찍었다. 항공지도 상의 좌표를 집어든 내 손은 떨렸다.
그 곳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부모형제 남겨둔 고향을 그리는 나의 마음…. 청명한 날씨였다. 애기(愛機)는 풍진을 일으키며 이륙하여 전투대형으로 일로 목표를 향해 북쪽으로 날았다. 목표는 100리, 90리, 80리로 가까워진다. 낯익은 산천 촌락이 서서히 태극 은익(銀翼) 아래 흐르고…….' (제10전투비행전대 소위 서상순)
▦ 공군 정훈감실이 최근 군역사기록관리단에서 누렇게 바래 금방 바스러질 것만 같은 옛 자료를 찾아냈다. 단기 4285년, 그러니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만들어진 '공군순보'다. 열흘 단위로 아홉 달 간 발간된 이 작은 소식지에는 전장에 나선 장병들의 심정이 엿보이는 글 등이 빼곡이 담겨 있다. 앞 인용문은 그 중 '내 고향을 폭격하고'의 내용을 발췌해 현 어법으로 고친 것이다. 홀로 월남해 전투조종사가 된 아들이 공교롭게도 고향마을을 폭격하게 되면서 느낀 애절한 마음을 담아 쓴 글이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 '고향을 떠나던 새벽 늙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서 가거라. 하나라도 살아야지. 우리 늙은이들이야 그런대로 살다가 죽더라도…. 어서 누가 볼라. 앞집 영호가 눈이 빨개서 날뛰더라." …어머니, 제가 온 것을 아십니까.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자식은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단장(斷腸)의 눈물을 겨우 참았다. (아! 상환아, 너는 죽었느냐, 살았느냐?)…산 속 천막에서 뛰어나온 이들 중에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도 있을 테다. 비행기가 날아와도 떠나지 않는 그들은 이 나라가 정의의 나라임을 믿고 있었다. (하략)'
▦ 작자가 서병조 이등중사(현 하사)로 적힌 시도 있다. 전쟁에 가족과 집을 다 잃고 목놓아 부르는 망향가다. '차라리 망향함이 어리석어 고향을 잊으렵니다/ 살뜰히 모시려던 어버이 끝끝내 집 지키다 왼 가슴에 피 흘리시고 /초라한 오막은 포탄에 허물어져/ 사랑하던 처자는 이름 모를 들판에 눈보라가 매장했습니다/ 지금에사 망향한들…/…샅샅이 포탄에 폐허되어 즐거움도 사랑도 없는 고장입니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경황없이 떠나보내는 호국보훈의 달 말미에라도 전쟁과 국가와 희생의 의미를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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