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역습 능력의 산물이라는 것 외에는 이 경기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28일(이하 한국시간) 벌어진 브라질-가나의 16강전을 지켜본 FIFA 기술연구그룹의 로이 호지슨 위원은 이렇게 혀를 내둘렀다. 전반전 볼 점유율(46%-54%)과 슈팅수(5개-7개)의 열세. 그러나 스코어는 3-0으로 브라질의 완승이었다.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에서는 물론이고 내용상 밀렸던 경기에서도 브라질은 승리한다. 마치 승리의 여신과 ‘뒷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최고 기량 선수들의 '팀 플레이' 효율성 극대화… "역사는 승리한 팀만 기억" 끝없는 변화 추구
월드컵 통산 최다인 5회 우승에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이어진 11연승 행진, 월드컵 통산 15골로 최다득점 기록을 세운 호나우두, 94년 미국월드컵부터 무려 4대회 연속 결승전 출전을 노리는 카푸, 월드컵 사상 첫번째 팀 200득점 기록. ‘왕국’ 브라질의 치세(治世)는 그칠 줄 모르게 계속된다.
그러나 왕자의 면모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술과 구성원의 특징 모두가 상당히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 브라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변신하는 노력이야말로 브라질 축구 패권의 비결인 것이다.
■ 아름다운 축구는 잊어라! 이기는 축구가 정답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에게 우승컵을 안긴 뒤 8년 만에 대표팀 감독으로 컴백한 카를루스 파헤이라 감독은 변화의 주역이다. 그는 “왜 브라질은 항상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면서 “역사는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인 팀이 아니라 우승을 차지한 팀만을 기억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도 28일 분석기사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대해 “오랫동안 그들을 상징했던 예술적인 기교 대신 냉혹할 정도로 효율성을 앞세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변화는 파헤이라 감독의 독특한 경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국가대표는 커녕 프로선수 경력조차 없는 피지컬 트레이너 출신의 파헤이라 감독은 브라질 대표팀의 운영 원칙을 ‘질서와 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감독들은 누구를 뽑아야 할 지 고민이지만 나는 누구를 떨어뜨릴 것인지 고민한다”는 파헤이라 감독은 “스타 선수가 많다고 월드컵 우승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대신 “수비수, 공격수, 이를 조율하는 선수 모두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독으로 5차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 코치(70년 멕시코월드컵)와 감독(94년 미국월드컵)으로 각각 월드컵에서 1번씩 우승한 경력 때문에 ‘머리 굵은’ 선수들도 ‘개인 플레이’를 하기 어렵다.
■ 3번째 드림팀의 전성기
그렇다면 브라질 축구에서 예술적인 개인기가 사라졌을까? 그건 아니다.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아드리아누, 카카 등 이른바 ‘마법의 4중주단’의 기교가 균형을 이루며 엄청난 위력을 보이고 있다.
공격진영 볼 점유율에서 38%를 기록, 가나(62%)에 확연하게 밀렸던 브라질은 전반전 딱 두 차례의 역습으로 가나 골문을 열었다. 선취골은 카카의 ‘킬 패스’를 받은 호나우두의 몫이었고, 2번째 골도 카카의 발끝에서 시작해 아드리아누의 슈팅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을 앞세운 ‘2006 대표팀’는 브라질 사상 3번째 드림팀으로 평가받는다. 첫번째는 펠레, 토스타오, 히벨리누, 자일징요가 주축이 됐던 70년 멕시코월드컵 대표팀. 이들은 브라질의 월드컵 사상 최다골(19득점)을 기록하며 정상에 올랐다.
2번째 드림팀은 지쿠, 팔카웅, 소크라테스, 세레주를 지칭하는 ‘황금의 4중주’가 이끌었던 82년 스페인월드컵 대표팀이다. 사상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브라질은 당시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3-1로 가볍게 꺾었지만 이탈리아에게 2-3으로 패하는 이변(?) 끝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브라질에선 5명이 심장마비로 숨졌고, 2명이 자살하는 등 큰 충격에 빠졌지만 정작 대표 선수들은 화려한 명승부를 선보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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