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일명 ‘누벨바그’의 선두주자로 프랑스 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던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 감독. 세계적 거장으로 이름이 드높았지만 그에게도 영화 연출은 여러 모로 녹록치 않았나 보다. 영화에 대한 영화인 ‘사랑의 묵시록’(1973)에는 촬영 현장에서 그가 헤쳐나가야만 했던 현실적 어려움과 고뇌가 절절히 묘사되어 있다.
‘사랑의 묵시록’에서 남자 주연 배우는 한 스태프에게 실연을 당하자 분을 못 이기고 촬영장을 무단 이탈하려 한다. 왕년의 스타였던 여자 배우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엔지(NG)를 연발하면서도 되레 신경질을 부린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넉넉한 성품으로 스태프와 배우를 다독였던 노배우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제작자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 않고 그저 “제작비 좀 아껴 써라. 촬영 일정 지켜라”며 수시로 압력을 행사한다.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 트뤼포 감독이 연기한 페랑 감독은 모든 돌발 사태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며 오로지 정해진 돈과 기간 안에 촬영을 마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그에게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로베르 브레송, 장 르누아르 등 존경하는 대가들에 관한 책 표지를 훑던 그의 눈에는 ‘과연 거장들도 이랬을까’ ‘나는 이런 환경에서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상념이 교차한다.
우리나라의 영화제작 현실도 트뤼포 감독이 겪었던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개봉을 앞둔 두 영화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영화 만들기의 험난함은 그 이상인 것 같다.
가을 개봉 예정인 유지태 김지수 주연의 멜로 영화 ‘가을로’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촬영장소 섭외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백화점들이 “손님 떨어진다”며 영화사의 협조 요청에 손사래를 쳐서다. 결국 한 건물을 빌려 백화점 장면을 찍었지만 생각지도 않던 곳에 인력과 돈을 쏟아야 했다.
7월 6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아파트’는 영화제작을 마친 뒤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쳤다. 촬영 장소로 사용된 아파트의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 “무서워 못 살겠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애써 만들어놓고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 역시 영화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만드는 것은 아닌가 보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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