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이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완벽히 보증해주지 못하고, 또 근래의 문학상들이 스스로의 권위와 문학의 값을 깎아 내리는 우를 범하기도 하지만, 성취 뒤에 따르는 합당한 문학상은 작가 이력을 빛내는 위엄의 액세서리가 된다.
소설가 박완서(75)씨가 받은 10여 개의 상이 그러하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6년이라는 긴 시간의 마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상 작품들은 한결 같은 삶의 무게로 묵직하고, 그 무게에 값하는 깊이의 감동이 있다.
그의 문학상 수상작품집 ‘환각의 나비’(푸르메 발행)가 출간됐다. 세는 나이 마흔(1970)에 장편소설 ‘나목(裸木)’으로 등단해 줄잡아 10여 편의 장편과 100여 편의 중ㆍ단편으로 우리 문학의 거목(巨木)으로 우뚝한, 그의 문학의 정수라 해도 과하지 않을 알토란 같은 작품들을 모은 책이다.
책에는 원치 않는 낙태 전문의로 살아온 한 산부인과 의사의 삶을 통해 강간과 낙태의 기억에 짓눌린 여성의 비극을 그린 ‘그 가을의 사흘 동안’(한국문학작가상,80년),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담은 ‘엄마의 말뚝2’(이상문학상, 81년), 남아선호의 구습에 의해 도구적 여성으로 길들여진 주인공이 인간의 모습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꿈꾸는 인큐베이터’(현대문학상, 93년), 80년대 독재정권의 폭력과 상처를 주제화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동인문학상, 94년)이 수록됐다. 또 작가 자신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꼽은, 청상으로 세 아이를 힘겹게 길러낸 치매 노모의 내밀한 상처를 이야기한 ‘환각의 나비’(한무숙문학상, 95년)도 실렸다.
평론가 김수이씨는 해설에 박완서 소설의 ‘웅숭깊은 재미와 충족감’의 뿌리가 “오래 고통을 삭인 사람의 명치 끝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이며 비명”이라 썼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행복’의 체험이라고 했다. “(직ㆍ간접적으로)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못한다”는 작가 자신의 말처럼, 그의 문학은 체험된 시간과 세상, 관계 속에서 잉태돼 그 속에서 지금도 왕성히 숨을 나누고 있다.
박완서씨의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90년대에 한 차례 나왔으나 이내 절판 됐고, 이번에 다시 표제작을 보충해 출간됐다. 앞서 문학상이 작가의 액세서리라고 했지만, 상이 스스로의 권위를 수상자의 권위에 의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면 아마도 이 책에서 그 전도 현상의 한 그늘을 보게 될 것이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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