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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애 낳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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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애 낳지 맙시다

입력
2006.06.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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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가 셋이다. 셋째를 낳은 것은 1995년인데 당시만 해도 아이를 적게 낳자는 정부 정책이 완고하던 터라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여 분만하면서 든 돈이 첫째, 둘째 때보다 네 배를 크게 웃돌았다.

가끔 자녀 한 명을 키우려면 2억원이 든다느니, 자녀교육에 한국인은 돈을 쏟아 붓느니 하는 자료를 보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많이 가진 데 대해서 후회를 해본 적은 없다. 후회는커녕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력이 바로 신문기자나 동화작가가 아니라 아이 셋의 어머니이다.

자녀가 부모를 더 사랑해

그저 보기만 해도 벙싯벙싯 웃음이 나오는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축복인가. 아기에서 어린이까지 자녀들이 엄마한테 보여주는 전폭적인 신뢰와 사랑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통찰력이 뛰어난 친구 한 명은 이렇게 표현했다. “애들이 어릴 때 엄마 사랑하는 걸 생각하면 평생 자식 키우느라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할 것 없어.” 그렇다.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기보다 아기가 엄마를 더 티없이 믿고 사랑한다. 자녀를 버리고 학대하는 부모는 간혹 있어도 부모를 괴롭히고 의심하는 아기는 없으니 부모의 사랑보다 자식의 사랑이 넘친다. 물론 그 시기가 대개 대여섯 살을 넘기지 않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이렇게 소중한 아기를 낳지 않는다고 하여 온 나라에 위기론이 범람한다.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늘리기 위해 수 조원을 쏟아 붓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애 낳을 생각이 뚝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아기가, 생명이 귀해서 태어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용이나 해먹으려고 아기를 기다린다. 이대로 출산율이 떨어지면 노동인구는 줄고 노령인구는 많아지는 고령화사회가 와서 청장년층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들한테 ‘어서 태어나서 나 좀 부축해다오’가 요체이다. 이래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이런 문제라면 굳이 출산율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

요컨대 경제만 튼실하다면 노동인구가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외국인노동자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 미국처럼 외국인 가운데서 더 유능하고 더 진취적인 노동인구만 이민으로 받아들여 경제의 활력을 지속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까 걱정해야 할 것은 출산율이 아니라 경제이며 세워야 할 것은 저출산대책이 아니라 건전한 경제구조이다.

출산대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을

사회분위기만 건전하다면 입양을 통해서도 차세대는 자라난다. ‘우리 아기를 우리가 지키자’, 이런 민족주의가 아니라 생명 하나를 귀하게 거둔다는 뜻에서 베트남과 소말리아 이디오피아의 어린이까지 입양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고 와야 한다. 출산율은 높인다면서도 한국인이 외국에서 탄생시킨 혼혈아들은 호적에 오르지 않는 한 국적을 얻을 수 없는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서 무엇보다 불쾌한 것은 여성을 생산시설로 보는 관점이다. 태어날 아기들이 자원이 아니듯이 여성은 애를 낳으라면 낳고 낳지 말라면 단산하는 인력생산공장이 아니다. 과거의 산아제한이 부끄럽다면 억지스런 출산장려 정책이 얼마나 저급한지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살기 좋은가

정말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먼저 한국사회가 아기와 어린이와 청소년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분유나 아기기저귀 젖병이나 유아옷 같은 보육용품을 싸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어린이의 질병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학교는 교육다운 교육을 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수 십년 전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영이나 실험실습이 한국의 교실에서는 요원하다. 교사가 어린이를 폭행하는 일이 심심치 않으니 다른 것을 말해 무엇할까. 한쪽에서는 돈이 넘쳐 나면서도 학교는 가난해서 급식시설을 만드는 걸 대기업에 의존하고 그 비용 때문에 기업에 볼모를 잡혀서 문제 많은 급식을 청소년들은 감수해야 하는 이런 문제점부터 바로잡는 것이 출산율을 높이는 일이다.

지금 자라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한 여성들이여, 애를 낳지 맙시다.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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