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유효기간 3년. 키스 한 번으로 4만개의 박테리아를 주고 받는 사이. 현미경으로 보는 박테리아처럼, 가까이서 보면 아름답지만 평생을 봐도 규칙을 찾아낼 수 없음. ‘생활’과 접촉하면 부패하는 속성.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었던 물고기 부부가 있다. 아내가 늘 불평만 한다고 짜증내던 남편과 남편이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던 아내는 마법의 저주로 물고기가 됐다. 3년간 변치 않고 사랑하는 커플이 나타나야만 마법이 풀리는 이 물고기 부부 앞에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오토(크리스티안 울멘)와 이다(알렉산드리아 마리아 라라)가 나타난다. 이들의 사랑은 3년의 유효기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독일 여성감독 도니스 되리의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재기와 위트로 사랑의 본질을 통찰하는 아주 똑똑한 로맨틱 코미디다. 전작 ‘파니 핑크’에서 스물 아홉 노처녀의 비극을 유쾌하게 그려낸 감독은 남루한 현실과 직면했을 때 어떻게 사랑의 위기가 오는지, 왜 사랑과 일을 동시에 쫓는 여자는 늘 불행해지는지, 왜 남자는 외면하고 여자는 불평하는지, 우리 모두가 숱하게 겪었으나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고민들을 특유의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술술 풀어낸다.
첫 만남에서부터 사랑, 결혼, 육아,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까지 남녀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웃음으로 버무려내며, 영화는 사랑의 일대기에 관한 진지한 사유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패턴 수집을 위해 일본을 여행하던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이다는 우연히 만난 물고기 박테리아 전문가 오토에게 반해 간소한 일본식 결혼식을 올리고 캠핑카 생활을 시작한다. 눈만 마주쳐도 행복하던 달콤한 신혼의 나날이 지나가고, 야심찬 이다와 소박한 오토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디자이너로 성공할 기회를 잡은 이다는 육아와 가사를 오토에게 맡겨둔 채 성공을 향해 질주하지만, 오토는 “왜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려고만 드냐”고 이다를 원망한다. 영화는 외도의 유혹과 갈등, 이별의 과정을 거쳐 재결합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애정 연대기를 좇으며 사랑의 유효기간을 갱신하는 아주 쉬운, 그러나 행동에 옮기기엔 전혀 쉽지 않은 비결을 제시한다. 현재를 긍정하고, 날마다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것.
“유명한 부인의 그늘 밑에서 사는 기분이 어떻습니까?”(기자)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늘이 좋습니다.”(남편) “당신은 계획도 꿈도 없어.”(아내) “당신은 뇌도 없이 계획만 짜.”(남편) 영화는 재치경연대회 금메달 감의 톡톡 쏘는 대사들과 비단잉어 문양의 총천연색 영상, 감미로운 21곡의 배경음악으로 시종 관객의 우뇌는 웃게, 좌뇌는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의 해법이 너무 쉽지만, 그 해법을 복음처럼 마음에 새기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힘이다. 원제 ‘The Fisherman And His Wife’. 28일 개봉. 15세.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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