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이루어진 김영남씨의 모자상봉에서 또 다른 주인공은 김씨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요코다 메구미씨 사이에 난 딸 은경(19)양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납북된 부모를 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미어졌다.
지금껏 ‘혜경’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던 은경양은 이날 생면부지인 친할머니 최계월씨와 아버지 김씨의 상봉을 지켜보며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다.
동생 철봉(7)군과 함께 할머니에게 큰 절을 올릴 때도 은경양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일본인 어머니를 여의고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온 은경양은 존재 자체가 분단의 비극이자 ‘슬픔’이었다.
은경양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밝아졌다. 상봉이 끝난 뒤엔 버스에 올라타는 할머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남측 취재진이 손을 흔들자 쑥스러운 듯 커튼 뒤에 몸을 숨긴 채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 때만큼은 흰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는 은경양에게선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 대신 여느 북녀(北女)의 순박함이 느껴졌다.
첫 만남 뒤 “표정이 무척 밝았고 눈매도 또랑또랑했다”며 조카 자랑을 늘어놓던 고모 영자씨는 만찬상봉이 끝날 때도 은경양의 볼에 뽀뽀를 하며 애틋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간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던 은경양은 이날 왼쪽 가슴에 김일성대 배지를 달고 나왔다.
만찬장을 찾은 한완상 남측 상봉단장이 전공을 묻자 은경양은 “올해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영남씨는 “제가 미래를 보고 컴퓨터학과로 보냈다”고 거들었다.
은경양의 존재는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때 처음 공개됐다. 한달 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내가 원하는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메구미씨의 부모)가 북한에 오는 것”이라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은경양은 일본에서 납치 피해자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은경양의 이름이 혜경으로 알려진 데 대해 북측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002년 10월 인터뷰 때 이름을 써보라고 했더니 ‘김은’으로 쓰다가 ‘김혜경’으로 고쳐 썼다”며 “은경이 본명, 혜경이 가명일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남측은 영남씨가 대남기관에서 활동하는데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어 가명을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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