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납북된 김영남씨와 모친 최계월씨의 상봉을 허용, 공개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자 치밀하게 기획된 홍보전략이었다. 국제적 이슈로 비화한 납치문제를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다고 판단,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는 노력을 보인 것이자, 국제사회에 인도적 측면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다.
최근 북한은 인도적 문제로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남한에서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가 남북관계 진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김씨와 결혼한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메구미씨 문제가 정치 이슈가 돼있다. 특히 메구미씨 사건은 탈북자 문제와 함께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을 문제삼고 압박하는 원인으로 작용돼 왔다.
북한은 이날 전 세계 언론에 김씨 모자가 눈물로 상봉하는 장면을 내보내 일단 국제사회에 “우리도 나름대로 인도적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쓴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상봉 방식도 치밀한 기획의 흔적이 엿보였다. 단체상봉을 하는 다른 이산가족과는 달리 김 씨 모자만 별도의 방에서 만나게 했다. 비공개 진행의 관측과는 달리 남측 언론의 취재도 허용했다. 다른 상봉자들과 분리, 김 씨 모자의 만남을 극적으로 채색하려는 특유의 홍보 방식이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29일로 예정된 김씨의 기자회견. 김씨는 회견에서 일본에서 제기하고 있는 메구미씨의 가짜 유골문제와 생존 가능성, 자신의 납북과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딸 은경(혜경)씨의 송환여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 씨는 자신이 납북된 것이 아니라 의거 입북이라고 주장하고 메구미씨가 1994년에 사망했다며 일본의 생존가능성 주장을 강하게 비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일본이 메구미씨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반박을 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아울러 납치문제에 대한 남한과 일본의 대북접근법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인지 우회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도 갖고 있는 듯 하다. 남한은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생사확인과 상봉 순으로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점진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메구미씨의 유골 문제를 쟁점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다. 일본식으로 자신들을 압박해서는 아무 것도 진전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김 씨 모자의 상봉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납북자 문제를 풀어가는 자신들의 노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면서 “남한과 일본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태도도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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