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 회장의 변호인들은 5월 26일 보석 허가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경영 공백과 건강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법원은 비자금 1,034억원 조성 및 사용에 대해 정 회장이 원칙적으로 자신의 형사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을 보석 허가의 결정적 이유로 삼았다.
정 회장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김동오 부장판사는 28일 “비자금 1,034억원 부분에 대해 정 회장은 검찰 신문에서는 부인하고 변호인 신문에서는 시인하는 등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며 “하지만 26일 열린 재판과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을 통해 형사책임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비자금 조성 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며 “비자금 사용처에 대해서도 정 회장이 형사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재계 서열 2위인 현대ㆍ기아차 그룹 총수의 구속이 경영 공백을 야기,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정 회장측의 주장에 대해선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그럴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고려했다고 밝혀 사회 여론을 하나의 판단 근거로 삼았음을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인 측의 신청서 외에 인터넷을 통해 자료도 찾아보고 법원 내외부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의견을 구했다”며 “심지어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까지도 참고했다”고 말했다.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라며 돌연사 가능성까지 언급한 정회장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법원은 정 회장의 보석을 허가함으로써 유죄 판결 전 구속이 사실상 처벌의 의미를 갖고 있는 현실에서 정 회장에 대한 특혜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부장판사는 “유사 사건 등에서 구속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특정 인사에 대한 특혜 의혹에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다”고 토로했다. 김 부장판사는 유사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던 다른 기업 총수와의 형평성에 대해 “현대차가 수출기업으로서 대외 거래가 많은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며 정 회장이 특수한 경우임을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보석 결정은 법원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불구속 재판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재판은 가급적 신속하게 진행할 예정이고 유죄가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 엄정하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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