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란아의 테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란아의 테마

입력
2006.06.29 00:03
0 0

란아는 대략 9개월 먹은 고양이다. 그 동안 자유고양이로 살아온 란아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만 이틀을 케이지(cage)에서 지낸 란아를 캣타워(cat tower)로 옮겨 놓을 때, 란아나 나나 잔뜩 겁을 먹었다. 물거나 할퀼까 봐 모골이 송연했지만, 나는 이를 앙다물고 케이지를 수직으로 세워 그 안에서 버티고 있던 란아를 캣타워로 털어냈다.

그런데 기대했던 바와 달리 란아는 위 칸으로 올라가지 않고 맨 밑 칸의 모래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사흘을 꼼짝 않았다. 밥 먹을 때만 마지못해 상자 밖으로 나왔다. 나는 처음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란아 시중을 들었지만 이제는 맨손으로 처리한다.

지금 란아는 가운데 칸에 누워 있다. 밥그릇을 거기 올려놓아 거동을 유인했다. 란아가 자유고양이었을 때 제 오라비를 따라 들어와 갖고 놀던 깔개를 깔아줬는데,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볼수록 가엾고 예뻐서 틈틈이 휘장을 들추고 란아를 본다. 울짱 사이로 손끝을 넣어 살짝 건드려도 본다. 열린 창으로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오고,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월드컵축구경기장의 함성이 아련히 들리고. 고양이에게 썩 나쁘지는 않은 시간이다. 단 그 고양이가 갇혀 있지만 않다면.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