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개선안을 주장하기가 조심스럽다. 개선일지 개악일지 자신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제도도 장단점이 있고 미래 상황에서 무슨 결과를 낳을지 단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확실하지 않은 속에서도 제도개혁을 시도해야만 할 때가 있다. 기존 제도가 도저히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때다.
● 유명무실한 자정 기능
국회 윤리특위에 해당되는 말이다. 국회의원들의 윤리 문제는 국회 이미지를 훼손하고 정치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오래 전부터 국회 비판의 단골 메뉴다. 의원들의 명백한 탈법행위 못지않게 그들의 막말, 물리적 충돌, 겸직에 의한 이해충돌, 영향력 행사 등의 윤리 문제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 인식을 나쁘게 해왔다.
국회윤리에 대한 광범한 비판에 버금갈 만큼 윤리특위에 대한 실망과 불신도 광범하게 퍼져있다. 거의 개점휴업 상태고, 어쩌다 회의가 열리는가 싶으면 곧 끝나버리고, 동료의원의 심각한 윤리 문제에 대해서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윤리특위가 있으나 마나라는 비판은 우리 귀에 익숙하다.
윤리특위 제도가 국회의 자정(自淨)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새로운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물론 위원장과 위원들이 새로운 각오로 임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지도 모른다. 지난 주 17대 국회 후반기의 윤리특위가 새로 구성되었는데, 새 위원장과 몇몇 위원들의 평판을 볼 때 이번엔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봄직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면면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임 위원장도 개혁적 인사로서 국회윤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제도의 취지를 살리겠다고 공언했었으나 성과가 미미하지 않았는가.
좋게 보면 자정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로 지탄받을 수 있는 것이 윤리특위의 구성이다. 여야 몇 명씩 차출된 의원들이 동료의원의 윤리 문제를 심사해 필요시 제재를 가하는 체제가 잘 작동되기는 힘들다. 동료의식, 악역으로 욕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 나도 언젠가는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정당간 힘의 균형을 깰 수 있다는 부담감, 극한적 정당대결을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아닌 외부인사들이 국회윤리 감시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몇몇 대안을 들 수 있다. 첫째, 외부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의기구가 1차 조사를 하고 윤리특위에 구속력 높은 제안을 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둘째, 윤리특위를 의원과 외부인사로 반반씩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윤리특위를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하는 방안도 있다. 넷째, 이 중 어떤 대안을 택하든 윤리특위 결정을 본회의가 쉽게 묵살하거나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방안들의 장단점을 살펴 상대적 우선순위를 논하되, 중요한 점은 기존 제도처럼 의원들에게만 맡길 수 없고 외부 감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대표성 없는 외부인사가 국민의 대표자를 윤리 문제로 압박하면 대의민주주의 원리가 훼손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윤리특위는 공공정책이 아닌 의원 개개인의 윤리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외부인사가 참여해도 대표성 원리가 훼손된다고 볼 수 없다. 또 혹자는 미국의회 윤리위원회도 외부인사를 위원으로 두지 않는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의원은 상대적으로 지역구민과 이익단체의 강한 감시 속에 놓여있어 윤리 문제와 관련해 외부 견제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다.
● 정치불신 완화 효과도 기대
한국정치 발전은 사회갈등을 적게 야기할 중위 수준에서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헌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려다 전면적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면 오히려 정치발전에 해가 된다. 외부인사의 윤리특위 참여는 큰 사회갈등을 수반하지 않을 부분적 제도개선이지만 국회윤리 제고와 정치불신 완화라는 큰 효과는 지닐 것이다. 긍정적 수용이 촉구된다.
임성호ㆍ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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