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가 아시아의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지난 23일 일본 교토의 교토조형예술대학 캠퍼스에서는 윤동주 시비 제막식이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곳은 시인의 도시샤대 유학시절 자취방이었던 다케다 아파트가 있던 곳으로, 창작의 불꽃을 피웠던 마지막 보금자리였다.
시인은 이곳에서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의 굴레가 씌워져 1943년 10월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1945년 2월 알 수 없는 이유로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당시 함께 체포돼 역시 옥사한 시인의 고종 사촌 송몽규를 면회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매일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밝힌 바 있어 일제의 악랄한 생체실험 희생자라는 설도 떠돌고 있다.
이날 제막식에는 시인의 여동생인 윤혜원씨 등 가족과 윤동주기념사업회 회장인 정창영 연세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인사말을 한 도쿠야마 요시노부 교토조형예술대 이사장은 “그의 인생을 돌연히 닫아 버린 것은 전쟁이고, 식민지화였다”며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평화를 되돌리자고 호소했다.
홍익대와 동아시아 평화를 테마로 예술 분야에서의 한일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교토조형예술대는 이날 시비 제막식을 아시아의 평화 되찾기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은 셈이다.
윤동주 추모비 건립 움직임은 다른 곳에서도 활발하다. 안자이 이쿠로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시인이 체포되기 두 달 전 도시샤대 학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장소인 교토 우지시 아마가세 다리 근처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기념비 건립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안자이 교수는 “현재 우지시와 시비 기증안을 놓고 교섭 중”이라고 밝혔다.
아마가세 다리는 매년 5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위원회는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참된 화해를 위해 윤동주가 살아온 증거를 이곳에 새기며 미래의 기념으로 남기려 한다”며 “작은 소망들이 모아져 아시아 지역의 참된 우호와 평화와 화해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1995년 도시샤대 이마데가와 캠퍼스에 윤동주 시비가 처음 세워졌다. 어두운 일제의 침략주의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시인의 청아무구한 시심이 알려지면서 일본 사람들도 깊은 감동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윤혜원씨는 “오빠의 시와 삶이 나라를 초월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감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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