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없는 현장은 맹목입니다.”
새만금 간척,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천성산 터널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환경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해왔던 환경운동가들. 그러나 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정책의 빈곤에서 비롯된 이론과 현장의 괴리였다. 이 때문에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언제부턴지 추상화한 환경논리로는 더 이상 운동을 주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십수년간 현장에서 환경운동을 해온 ‘환경운동 2세대’(1세대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 세대)들이 환경정책과 이론에 대한 연구, 미래 과제에 대한 예측, 전문화한 인적 자원의 구축 등 새로운 환경운동을 표방하고 ‘생태지평’이란 단체를 4월 결성했다.
창립 멤버는 모두 환경운동연합 출신으로 박진섭(42) 전 정책실장, 황호섭(35) 전 생태보전국장, 새만금 간척반대 삼보일배의 실무자였던 장지영(33) 전 부장, 장 부장의 남편인 명호(38) 전 부장, 박항주(37) 전 부장, 김미현(40) 전 부장, 이승화(27) 전 간사 등이다. 공동 이사장은 고철환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김인경 원불교 부안교당 주임교무, 세영 신륵사 주지스님 등 세 사람이 맡았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택을 빌려 문을 연 생태지평은 22일 집들이를 하며 맞이한 손님들에게 “환경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전략 기지가 돼야죠”라고 힘찬 포부를 밝혔다.
“환경운동은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설립 이후 25년 동안 현장운동과 현안 대응을 통해 수많은 성과를 일구어 냈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국민들의 환경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생태지평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박진섭 부소장은 이런 걱정의 말을 통해 새로운 환경단체를 만든 속내를 내비쳤다. 경제가 어려워 환경운동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아직 운동은 이를 설명해줄 만큼 과학적이지도, 이론적이지도 못하다고 반성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이론가로서 명성을 날렸던 박 부소장의 자성은 바로 환경운동에 대한 자기 비판이기도 하다.
이슈중심, 네거티브식으로만 대응하다 보니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박 부소장은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새만금 간척 반대운동이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저지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새만금 지역 주민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이해 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또 환경만 내세운 환경운동의 한계도 느꼈다. 새만금 간척에 접근하면서 전북의 경제적 가치까지 함께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환경운동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전략까지 포괄하지 못할 경우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생태지평은 더 이상 캠페인과 동원형태의 운동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폭로와 고발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대신 전문성을 키우겠다고 했다. 이슈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이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보전의 논거를 제시할 계획이다.
생태지평은 이런 차원에서 지난달 ‘헌법에서 환경권 논의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들은 현재 새만금 환경변화를 추적하고 있으며, 비무장지대(DMZ) 일원 생태계보전대책과 에너지 안보전략 등을 연구 중이다. 바로 시대가 요구하는 환경운동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서다.
송두영 기자 d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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