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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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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입력
2006.06.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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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근거지로 삼았던 길고양이들을 데리러 친구의 차를 타고 경기 양주에 있는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에 찾아갔던 게 열흘 전이다. 기록상으론 세 마리가 건재해 있었는데 내가 알아볼 수 있었던 건 가장 최근에 잡혀간 한 마리뿐이었다. 비좁은 공간에 숨이 턱턱 막히도록 빽빽이 갇혀 있는 고양이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들이 짓물러져 아예 감겨 있었다. 굳게 다문 주둥이로는 질질 거품을 흘렸다.

안락사를 시킬 때 시키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그렇게 두는 게 아니다! 내가 사람이라서 다행이었고, 또 사람인 게 부끄러웠다. 잠시 보는 것만도 충격인데,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 참상을 늘 보고 지내야 하다니! 사람을 그렇게 피폐한 환경에서 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책임자이자 수의사인 중년 남자는 성난 것처럼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말투가 버릇이 된 듯했다.

어찌나 폭삭 지쳤던지 돌아오는 길에는, 죄스럽게도, 내가 책임질 고양이가 한 마리뿐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게 한 뒤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름을 란아(蘭兒)라고 지었다. 흰 얼굴의 이마와 콧등에 드리워진 검정빛이 난초 같아서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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