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거대 건축물들, 예를 들면 다리, 고가도로, 고층빌딩 등은 대부분 기본적인 뼈대를 만들기 위해 철 아니면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이중에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사실 철과 콘크리트의 복합구조체인데, 보통 누르는 힘(압축력)을 받는 부분에는 값싼 콘크리트를 이용하고, 당기는 힘(인장력)을 받는 부분에는 비싸지만 성능이 우수한 보강철근을 심어넣는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계할 때에는 사용하는 두 재료의 비율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비율은 사실 기초적인 산수 실력을 갖춘 사람이 간단한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계산해낼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더군다나 이런 구조 계산법은 국가에서 제정하는 시방서(示方書)라는 설계지침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토목공학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설계를 하는 일은 가능하다. 상식적인 설계라면 당연히 콘크리트와 철근이 똑같은 강도를 갖도록 한다.
문제는, 현실적인 설계는 비상식적이라는 점이다. 일반인의 기대와는 반대로 모든 철근 콘크리트 재료에서는 철근의 양을 균형량보다 적게 설계해야만 한다. 이를 과소철근 설계라고 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안전상의 이유이다. 콘크리트는 깨질 때 유리처럼 한 순간에 부서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반면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어지면서 부서진다. 균형이 정확하게 맞는 경우에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함께 부서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져내린다.
반면 과소철근 콘크리트의 경우에는 철근이 먼저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처지다가 나중에 콘크리트가 파괴되기 때문에 서서히 무너진다. 파괴의 징후를 미리 보여 대피할 시간을 준다는 말이다. 이 점은 비전문가가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다.
전문가가 하는 일은 때로 비상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단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토목구조 설계자가 철근의 양을 상식적인 수준보다 낮추는 일은 철근을 빼돌리는 부실설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런 비상식적인 일의 배경에는 비전문가가 놓치기 쉬운 논리가 잠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계룡대 강연에서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강론했다. 정치권의 갑론을박에서 요즘 자주 등장하는 논제도 상대방의 역사인식이다. 심지어는 일반인들끼리 토론이 열리는 인터넷의 게시공간에서도 역사인식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공부 좀 하고 말하세요”는 이제 말싸움의 단골 수사가 된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그 말을 하는 사람 중에 역사 전문가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비전문가들이 역사공부를 통해 얻어야 하는 상식은 안전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토목공학에서는 비전문가가 설계한 상식적인 다리가 위험에 처할 경우 그 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은 충실하게 엮어넣은 철근 덕분에 도망갈 틈도 없이 순식간에 매몰되고 만다.
김주환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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