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경기지사는 26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차기 대선에서 어떻게 잘 살게 해줄 것인지. 어떻게 살아온 인물인지를 보고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행보에 대해 “민심의 바다에 뛰어들겠다”며 “100일간 전국을 순회하는 대장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_지난 4년을 복기해 보자.
“경기도에서 대한민국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생각으로 도정을 이끌었다. 경기도가 한국경제의 20%를 차지한다. 첨단산업에선 40%다. 10~2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외국 첨단 산업을 유치하고 R&D센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교육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영어마을도 추진했다.”
_유수한 외국기업 115개를 유치했는데.
“처음엔 수도권 규제 혁파 쪽에 중점을 뒀다. 그런데 그것대로 해 나가더라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뭔가를 찾았다. 그래서 외국 첨단기업 유치에 나선 것이다. 궁극적으로 어떻게 우리 경제를 살릴 것이냐는 고민이 바탕이 됐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키운다는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_언론은 손 지사를 높이 평가하는데 대중적 지지도는 제자리다.
“언론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을 일자리 만들기, 경제활성화, 국가경쟁력 키우기로 보기 때문에 평가를 해준 것으로 생각한다. 언론이라는 지성사회에서 인정한 만큼 앞으로 국민들도 평가해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회로 가야 하는가, 어떤 지도자 필요한가…결정적 순간에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본격 검증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_지역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지지도가 약세라는 지적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바꿔나가기 위해 정치한다. 경제는 디지털 경제로, 사람들의 삶은 디지털적 삶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정치는 아직도 아날로그다. 디지털 사회는 입출(入出)이 아주 유연하다. 아날로그 정치는 자기 것을 차지하고 앉아 패거리 지어서 땅 따먹기만 한다. 정치도 디지털로 바꿔야 한다.”
_4년간의 도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도지사는 원 없이 했다고 자부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중앙정부가 수도권, 경기도의 잠재력을 열어줬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정도다.”
_참여정부가 제동을 많이 걸었나.
“이 정부 국정과제가 균형 발전인데 오히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더 커졌다. 지방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의해 지방에 전략적 집중투자를 해야 했다. 평균을 강요하면서 수도권을 누른다고 지방으로 가나.”
_구체적으로 어떻게 했어야 하나.
“나는 경기도 내 균형발전을 이렇게 했다. 연천 포천 가평 등 경기도 외곽지역의 고교 하나씩 선정해서 23억원씩 지원했다. 기숙사 지어주고 어학실, 과학실험실, 원어민 교사, 연수프로그램을 만들어줬다. 이런 노력 2년 만에 가평종고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다. 다른 학교들도 대부분 성공했다. 이제 공부 때문에 논 팔고 집 팔아서 서울 안가도 되겠다고 한다. 지역균형 발전을 하고자 하면 뭐가 핵심 고리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_지방 별로 연구를 해봤나.
“도지사 직에서 물러나면 민심대장정을 한다. 그 과정에서 각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도 챙기겠다. 지방분권을 제대로 하려면 예산 체계를 바꿔야 한다. 중앙에서 광역지자체에 내려가는 돈은 몇 천억원이 되겠지만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에서 찔끔찔끔 주는 식이다.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경쟁한다. 전략적으로 집중 투자를 못한다. 그걸 다 모아서 통째로 도지사한테 줘야 한다. 근본적으로 예산체계를 바꿔야 한다.”
_김문수 경기지사 당선자의 대수도론에 대해 지방이 반발하는데.
“대수도론의 기본취지는 수도권 주민들의 생활 편익 증진이다. 행정구역 때문에 생기는 시민 불편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교통, 물, 쓰레기, 장묘, 하수도 등을 긴밀하게 협의하자는 게 대수도론의 취지다.”
_영어마을은 호평을 받지만 적자에 대한 우려가 있다. 또 그 비용을 학교별로 지원, 원어민 교사를 확보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영어마을은 사립 학원이 아니다. 공교육이고 의무교육이다. 수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닌 재정 지출의 문제다. 원어민 교사 확보도 좋은 방안이다. 그러나 말이라는 게 말로만 배워지는 게 아니고 생활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국군장병 1,500명을 교육시켰더니 장교 한 사람이 ‘23년간 영어 교육 받은 것을 통째로 뒤집어놓았다’고 소감문을 썼더라.”
_영어를 제2공용어로 삼자고 했는데.
“영어는 생존 전략이고, 발전 전략이다. 핀란드, 두바이, 싱가포르 등 강소국 3국을 돌아본 적이 있다. 공통점은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있고 개방돼 있다는 점, 그리고 영어였다. 자원이 없으니 倂뮌琯湧?와서 살 수 있도록 하고, 마음껏 비즈니스 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들이 와서 돈 벌면, 결국 자기들이 버는 것은 더 많다. 우리 살 길도 대한민국을 세계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서울을 국제금융도시로 만들자고 한다. 하지만 영어가 안 되는 국제금융도시가 어디 있나. 영어는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다. 물론 치밀히 준비해야 한다.”
_그런 관점이라면 한미 FTA에 대해 긍정적일 것 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 것을 줘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두바이는 자체인구가 2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에서 100만 명이 와서 먹고 산다. 역사적으로 개방한 사회는 앞서가고 자기를 가두는 사회는 뒤쳐진다.”
_퇴임 이후 스케줄은.
“민심의 바다로 들어가서 100일간 민심대장정을 하겠다. 지금 권력은 여의도에서 나온다. 그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징기스칸의 얘기대로 성을 쌓는 자는 망할 것이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할 것이다. 우리 정치는 자기 경계를 지키고 땅 따먹기 하는 패거리 정치다. 이런 구도는 깨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경계를 허물고 있다. 권력은 여의도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진정 국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뭔가, 진정 바라고 있는 것은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민심대장정 이후 찾아보겠다.”
_자택과 사무실은 어디에 마련했나.
“집은 마포에 세를 얻어 마련하고 사무실은 따로 계획이 없고 옛날에 쓰던 서대문의 조그만 사무실을 연락소 형태로 쓰려 한다.”
_지방선거 결과가 충격적이었는데.
“노무현 정권의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다. 이 정부는 대립과 분열, 갈등의 정치로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이걸 국민들이 빤히 안 것이다. 국가운영 능력이라도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데 경제는 어렵고 투자는 위축되고, 실업자는 늘어나고…제대로 된 게 없다. 그래서 국민들이 0점을 준 것이다.”
_한나라당에 시사하는 점은 없나.
“이걸 보고 ‘우리가 이겼다’고만 할 게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년 전 탄핵정국에서 한나라당도 비슷한 꼴을 당하지 않았나. 한나라당도 냉엄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 정권이 대립과 갈등, 무능함만 보여주다 이렇게 됐다면 우리는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대융합의 정치로 나가야 한다.”
_7ㆍ11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보나.
“대선에 대비, 당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할 그런 대표가 필요하다.”
_당내 소장파들은 젊고 개혁적 대표를 내겠다고 하는데.
“소장 개혁세력이 당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보수정당에서 소장 개혁세력이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게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이 보수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것은 좋다. 국가를 발전시키고 기업과 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보수도 자기혁신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보수정당이라고 개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개혁을 포기한 보수는 수구다. 한나라당에 개혁 에너지를 보태주고 적극적인 동인이 될 수 있는 소장 개혁세력은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_젊은 시절의 삶으로 보면 손 지사는 진보주의자인데 지금은 뭐냐.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이렇게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한다. 소련이 무너질 때 개혁과 진보는 사회주의 극복이었지만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선 사회주의 색채의 가미가 개혁인 경우도 있다. 역사적, 시대적 과제에 따라 진보의 개념이 다르다. 이 정부에서는 진보나 개혁을 얘기했지만 노동자나 서민은 더 어려워졌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뭘 하나 더 안겨줄까를 고민해야 한다.”
_다음 대선에서 국민들은 무엇을 보고 대통령을 선택할 것으로 보나.
“어떻게 살아왔나, 또 어떻게 잘 살게 해줄 것인가 이다. 국민들은 실천적인 리더십을 요구할 것이다. 더 잘 살게 해주고 사회와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실용적 리더십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도 볼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나, 역사와 어떻게 씨름 해왔나를 볼 것이다. 정당성이라고 할까.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떳떳해야 한다.”
인터뷰=이영성 부국장대우 정치부장 정리=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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