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사는 회사원 P(32)씨는 최근 아파트를 계약한 뒤 대출을 받기 위해 국민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대출 담당 직원으로부터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대한적십자사 등록헌혈회원에게는 부동산담보 신규대출 금리를 3년 동안 0.2% 할인해준다는 것이었다. P씨는 아파트값 3억9,000만원 가운데 2억7,000만원을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할 계획이다. 따라서 등록헌혈회원이 되면 3년간 162만원의 이자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P씨는 바로 가까운 헌혈의 집을 찾아 회원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원 등록을 위해서는 혈액성분 분석 결과가 나올 때까지 1개월 정도 기다려야 했다. 중도금 치를 날짜가 보름밖에 남지 않은 P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헌혈의 집 관계자는 “혈소판 헌혈을 하면 2주일 정도면 결과가 나온다”고 귀띔해 줬다. P씨는 곧바로 팔을 걷고 혈소판 헌혈용 침대 위에 누웠다.
요즘 헌혈의 집은 P씨 같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옥죄기의 일환으로 금리를 올리자 돈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서민들이 헌혈의 집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울시내 헌혈의 집에는 ‘국민은행과 함께하는 사랑의 헌혈’이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이들이 간호사에게 주택담보대출 관련 문의를 하는 웃지 못할 광경도 연출된다.
26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5일 4.97~6.37%이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날 5.36~6.56%로 급등했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이 은행의 ‘사회공헌형 우대금리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헌혈을 하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 주택담보대출 고객 중 등록헌혈회원 비율은 4~5%에 그쳤으나 최근 금리가 올라가면서 점차 비율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자를 덜 내려고 헌혈의 집을 찾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는 한적 관계자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서울 광화문 헌혈의 집 노영채(48ㆍ여) 간호사는 “잔금 치를 날짜가 다 된 서민들이 은행이자를 한푼이라도 깎기 위해 이곳을 찾는 심정은 이해한다”면서도 “대부분 첫 헌혈인 이들이 등록헌혈회원이 된 뒤 계속 헌혈에 동참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 간호사는 “주택담보대출 금리혜택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루 평균 5~6명 정도”라며 “급하다며 빨리 등록을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적 등록헌혈회원은 향후 적극적으로 헌혈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사람들로 여름철 비수기나 긴급상황 시 앞장서서 헌혈을 하게 된다. 현재 등록헌혈회원은 약 22만명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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