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를 앞두고 정부의 개혁정책이 조세와 연금부문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스위스와의 일전(一戰)에 앞서 월드컵 전운이 한참 고조됐던 22일 오후.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회 답변을 통해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은 국민적 동의를 구하고 여론을 수렴하면서 추진할 계획"이라며 "올해 안에는 정책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장기 조세개혁작업에 공식적으로 쉼표를 찍은 셈이다.
반면 그 동안 설왕설래(說往說來)를 거듭했던 연금개혁은 26일 "연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는 모습이다.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 추진을 유보키로한 데 대해 일부 언론은 즉각 '정책 표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방선거 전에는 '정부가 세금으로 서민을 다 죽이려고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더니, 이제 선거민심을 반영하겠다는데도 굳이 '고춧가루'를 뿌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당초 조세개혁방안에 대한 비판은 '세금으로 서민을 다 죽인다'는 식의 감정적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것은 타이밍의 문제였다. 명분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민생과 체감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굳이 다른 개혁 현안에 앞서 근로소득공제를 줄이고 부가세를 늘리겠다는 발상의 비현실성을 탓한 것이다. 아무리 역사가 요구해도 현실을 무시한 개혁은 불편을 초래하는 탁상공론(卓上空論)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공무원연금 개편은 시급성과 현실성, 국민 대다수의 지지라는 측면에서 요란스럽기만 했던 중장기 조세개혁 보다 앞서서 힘 있게 추진됐어야 할 대표적 개혁현안이다.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개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에 앞서 '세금으로 호의호식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공무원연금부터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 국민들의 연금액 산정 기준은 직장생활 초기부터 퇴직할 때까지의 월 평균소득으로 해놓고, 공무원연금은 급여가 가장 높은 시점인 '퇴직 전 3년 평균보수 월액'으로 해놓았으니 어찌 특혜시비가 없겠는가. 또한 이처럼 불합리한 급여체계 때문에 2040년이면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의 혈세로 메워야 할 적자폭이 48조원에 달한다는데 누가 공무원연금 개편이 전제되지 않는 국민연금 개혁에 동의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편논의는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이 비현실적이고 거창하기만 한 당위론으로부터, 힘겹지만 현실적인 '진검 승부'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 하다.
물론 벌써부터 저항이 없지 않다. 주무부서인 행정자치부에서는 "공무원연금법 연내 개정론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일방적 기대에 불과하다"거나, "연내에는 잘해야 대략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식의 '김 빼기'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국민연금 개혁과정에서 대다수 국민들 역시 후세를 위해 양보를 해야 한다면, 공무원들의 양보 요구에 대한 행자부 쪽의 시큰둥한 자세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지방선거 이후 가뜩이나 고립된 현 정권으로서는 그나마 남은 지지세력인 공무원 조직이라도 추스르고 싶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절하고 합리적인 개혁은 국민이 나서서 지지하게 마련이다. 개혁의 주인공이 유시민 장관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장인철 경제부 차장대우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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