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지만 아쉽게도 16강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고, 국민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열성으로 응원했다. 스포츠에서는 강인한 정신으로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 승부보다 페어플레이가 중요
우리 편에서 보면, 토고와의 경기에서는 상대편 선수 한 명이 빠지는 행운도 있었고, 대스위스전에서는 다소 억울한 판정을 수용해야 하는 불운도 있었다. 2002년 우리가 4강까지 갔을 때 외국에서는 편파 판정의 덕분에 주최국인 한국이 4강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하는 비난도 있었다.
경기는 모두가 승복하는 규칙을 정하고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규칙 적용에서 문제가 있다면 아름답지 못하다. 규칙의 적용은 우리에게 유리해서도 안 되고 불리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공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월드컵의 스포츠 상업주의에 휘말려 중요한 과제들을 제쳐두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과제들과 쟁점들이 광고수익을 앞세운 상업주의에 파묻혀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안보와 외교가 심각한 상황에 있음에도 국민들의 시선을 축구에 돌려 열광하게 한 것이 잘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와 월드컵경기는 그대로 즐기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또는 국가적 과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규칙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도 규칙을 지킬 때만 가능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도 규칙이 바르고 국민이 이를 따를 때만 성취할 수 있다.
규칙을 무시하고 억지를 부리고, 순수하지 못한 마음과 술책으로 반칙을 밥 먹듯이 해대는 이상 '더불어 사는 삶'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경제력만으로는 안 되고, 신뢰와 법치주의가 정착되어야 가능하다는 말도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나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거론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서로 선거를 통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이런 저런 논란들을 벌이는가 하면, 벌써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함하고 깎아 내리는 언행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행위들을 보면, 지난 대선 때마다 '묻지마 폭로'라는, 실로 야만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들이 떠오른다. 워낙 원시적이고 쓰레기 같이 추잡한 반칙이라서 말하는 것조차 더럽게 여겨지지만, 월드컵경기에서 어떤 팀이 이런 무지막지한 반칙으로 이겼다고 생각해보면 경기 자체를 무효로 해야 할 것이라는 결론에 쉽게 다다를 수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으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측은 이회창 후보측에 대하여 '이 후보 측근이 미래환경도시대표로부터 미국 여행경비로 20만 달러를 받았다', '1997년 대선당시 장남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1997년 대선 직전 어떤 건설회사가 이 후보에게 80억원을 주었다'라고 하며 상대를 공격하여 선거 판세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는데, 그 후 재판 결과 모두 허위사실로 밝혀졌다. 어느 샌가 우리 선거판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차별 허위공격이 통용되어 왔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선거규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 내년 대선 벌써 반칙해서야
정치권은 상대를 비난하고 모함하는 일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다음 대선에서 이런 반칙행위를 근절시킬 약속부터 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런 행위를 하는 자를 엄단하기 위한 법제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기판에서 반칙이 통용되는 한 그것은 경기가 아니다. 선거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그렇다. 반칙에 대해서는 분연히 분노할 줄 아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월드컵 경기에서도 배우는 교훈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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