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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총통은 우리만 틀렸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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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총통은 우리만 틀렸다 하네'

입력
2006.06.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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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지난 20일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을 했다.

27일 대만 입법원(의회)의 총통 파면안 표결을 앞두고 파면안의 부당성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TV 생방송 담화였다. 달변의 변호사 출신답게 그는 장장 2시간 동안 파면안이 야당의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점을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대만 헌정사상 초유의 파면안 정국을 맞은 그가 국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이 연설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쓰디 쓴 결과를 낳은 연설로 남을 것이다.

● 대만 초유의 파면안 정국

언론과 국민의 반응은 조롱에 가까웠다. 대만 유력지 중국시보(中國時報)는 “위대한 총통은 자신을 비난하는 우리만 틀렸다고 하네”라는 사설 제목을 달았다. 다른 신문은 “연설은 자신과 모두를 속이려는 정치 독백”이라고 폄하했다. 네티즌 여론조사에서도 85%가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참담한 결과는 그의 연설에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나왔다.

그는 “총통 본인의 위법이 있을 때에만 총통 파면이 가능한데 나는 결코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또 부인 우수전(吳淑珍)의 비리의혹에 대해서도 위법이 있으면 야당이 증거를 제시하라는 투였다. 총통 주변 비리가 파면 정국을 불러왔지만 측근 비리를 어떻게 근절할 지에 관해서는 조금도 진지하지 않았다.

천 총통 사위가 특권적인 직위를 이용해 내부자 주식거래 혐의로 구속되는 등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수갑을 찬 상황에 그가 너무도 태연했다는 평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특히 천 총통은 우 여사가 백화점 경영권 분쟁 당사자로부터 1억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알고 있는 국민의 지적 능력도 완전히 무시했다.

그의 연설은 “야당이 무슨 이유로 총통 파면안을 제출한 지 모르는 국민이 대다수”라는 언급에서 절정을 이뤘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측근비리에 책임을 지고 총통이 즉각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있는데도 여론을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대만인들은 “천 총통이 국민당의 반세기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2000년 대만의 첫 정권 교체를 이룰 당시 내세운 개혁와 부패근절이라는 명분을 상기했다면 이런 연설은 안 나왔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 정치인의 미덕은 겸손

27일 표결에서 천 총통이 파면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입법원의 절반을 장악한 야당이 파면안 통과에 필요한 재적 3분의 2의 지지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대만 국민들은 임기 1년 11개월을 남겨둔 천 총통을 염려하고 있다.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는 개성 강한 지도자를 우려한다. 그의 이번 연설은 정치인에게 겸손과 여론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 미덕인지를 새삼 확인시킨다. 국민 대다수가 지도자를 걱정하는 상황이 어디 대만 뿐이겠는가.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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