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학교급식 사고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교육ㆍ보건 당국의 안이한 대처, 기업의 양심 실종, 정쟁에 정신 팔려 ‘학교급식법’ 개정안 처리를 지연시킨 정치권 등이 만들어 낸 ‘3대 합작품’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물론 1차적 원인은 불결한 위생 관리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참에 위생 차원을 넘어 학교 급식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다.
왜 발생했나?
지금까지 교육ㆍ보건 당국의 발표를 종합해 볼 때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은 불량 식재료로 만든 음식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돼지고기 야채볶음’ ‘골뱅이 무침’ 등을 먹은 후 배탈 설사 증상을 보인 학생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재료의 구입에서 유통 및 조리에 이르기까지 ‘불량 식품’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인천과 경기 용인에 각각 위치한 CJ푸드시스템의 두 물류센터은 3월에 있었던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교육청의 합동 점검 대상에서도 빠졌다. CJ측은 “나중에 해당 구청으로부터 점검을 받았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굴지의 대기업이 후진국형 위생 사고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교육당국도 사태를 키웠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23일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이번 사고의 원인을 ‘노로바이러스’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한 이후 이러한 비난은 가중됐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의 경우 사태 발생 즉시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식중독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섣불리 급식 중단조치를 내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학부모 김모(49)씨는 “같은 일이 재발될 경우에도 교육ㆍ행정당국은 책임 회피성 발언만 늘어놓을 거냐”며 격분했다.
기본부터 지켜야
당국의 안이한 대처와 비양심적인 기업의 처신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급식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학교 급식을 직영으로 할 것이냐, 위탁으로 할 것이냐”하는 논란도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학교 급식이 본격화한 2002년 이후 식중독 사건은 연례행사처럼 터졌고 위탁 급식도 한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밥에서 ‘수세미 조각’이 나오고 국에서 ‘머리핀’이 나왔다는 ‘급식 괴담’이 학생들 사이에서 우스개소리 마냥 퍼질 때였다.
식중독 사고 발생률은 위탁이 직영보다 약 2.8배 높았고, 위탁 운영은 학교장과 업체와의 결탁설 등이 불거지며 불투명한 학교 행정의 한 사례로 거론됐다.
전교조가 2003년 9월 ‘직영 급식 체제 전환 희망학교’를 조사한 결과 2005년에 직영 전환하겠다던 학교 67곳 중 결국 11개 학교 만이 직영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위생 문제에 있어선 직영 급식 또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지난해 직영 급식에서 발생한 환자만 해도 자그마치 1,412명이나 됐으며, ‘학교장이 책임을 지고 소규모로 운영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오히려 운영상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급식 대란이 발생했던 A고교의 이모 교사는 “항상 조리장과 식재료를 청결히 관리하려는 영양사와 조리사 등의 노력 없이는 직영-위탁 논란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모두의 책임
이번 사태는 해당 기업과 교육ㆍ보건 당국은 물론 학부모ㆍ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전국교직원노조 장혜옥 위원장은 “학교 급식 문제는 아이에게 먹고 탈이 나지 않는 음식만 제공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차원이 아니다”며 학교 급식에 경제성과 효율성만 고려되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학교급식네트워크 배옥병 상임대표는 “국민 모두가 계속 깊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국회의원들이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수 년 째 국회에서 잠자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재갑 대변인은 “지난해 학부모의 급식 경비 부담이 77.1%에 이르는 등 수익자 부담률이 높다 보니, 단가를 자꾸 낮춰 저질 식재료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하루라도 빨리 ‘급식도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국가 차원의 학교 급식 기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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