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전이 열리던 13일 밤, 나는 버스를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돈 적이 있다. 외대에서 출발해 대학로를 지나 종로와 신촌을 경유하는 버스였다.
밤 10시, 한국의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가 열리던 그날, 나는 서울이 보고 싶었다. 경기가 아닌, 경기를 보고 있는 서울의 표정이 궁금했다. 나는 덜컹이는 버스 안에 홀로 겸연쩍게 앉아 라디오 방송을 경청했다. 창밖으로 골목마다 내복처럼 조금씩 삐져나온 붉은 빛들이 보였다.
서울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도시처럼 고요했다. 나는 그 고요가 무서웠다. 거리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마치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서울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바깥, 커다란 변두리가 되어 버린 듯 했다.
훗날 프랑스 전이 열렸을 때도, 나는 티브이가 없는 자취방에서 잠을 뒤척이며,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이웃들의 탄식과 탄성의 높낮이로 경기 내용을 상상했다. 내게 있어 월드컵은 하나의 ‘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24일, 스위스전이 열렸을 때, 나는 처음으로 화면을 통해 한국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어쩐지 나는 스위스 전 경기가 보고 싶었다. 토고 전 때와 같이 간접적인 방식의 귀동냥 관전기를 써볼까 하다 결국 경기를 봤다. 이번 경기는 내가 ‘봤다’는 게 중요한 경기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경기를 보기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센데로스의 선제골 때문도, 이천수의 눈물 때문도 아니었다. 그날 나는 새삼 ‘아, 내가 <축구> 를 보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잘 연마된 기술이 주는 아름다움이나 의외성은 뒤로 하고서라도, 한국 선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숨 막히게 뛰고 있다는 사실에 그냥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축구>
나는 경기가 이뤄지는 내내 90분간의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집약된 ‘노동’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는 치열함 자체가 주는 경이가 있었다. 관중들이 내심 포기했을 때조차도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열심히 뛰었다.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무수한 광고와 기획과 풍문들 사이에서도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스타’로서의 선수가 아닌 축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흘리는 땀을 보며 당황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쉬웠지만, 나는 좋은 경기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초록빛 잔디 위를 쉬지 않고 뛰어다닌 그 열 한 개의 심장에게 감사했다.
수사가 아닌 진심으로- 나는 한국 선수들에게 자긍심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자기위안이 아니길 바랐다. 우리는 성공과 마찬가지로 실패도 포장하려 하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말들은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아니, 가끔은 즐겁게 과장한다 하더라도,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뜨거움이 아닌 따뜻함이 아닐까 하고 홀로 생각해 보는 새벽이었다.
그 동안 우리는 선수들에게 사랑을 벌 주듯이 주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월드컵이 아닌 월드컵에 관한 것들이, 말들이 많은 한 달.
그 말들에 하나의 말을 더 보태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24일 새벽, 월드컵을 보는 이와, 보지 않는 이와, 볼 수 없는 이들이 한데 뒤섞여 잠 못 드는 밤- 졸다 일어나 메리야스 차림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경기를 관전한 한 처자의 마음의 박수만은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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