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꼬리라도 그렸더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하지만 재정경제부의 중장기 조세개혁은 용의 머리로 시작해 그냥 몸통쯤에서 붓질이 끝났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22일 국회에서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을 연내 정책화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재경부는 좀 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지 중단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2월에 하려던 조세개혁 공청회가 증세(增稅)논쟁에 휘말려 지방선거 뒤로 미뤄지더니 이제 와서 ‘연내 안 한다”고 발을 뺀다면, 중단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년 대선 시즌에 세금문제를 다시 꺼낼 수도 없고, 결국 요란하게 시작했던 세제개혁은 적어도 참여정부 하에선 ‘없던 일’이 된 셈이다.
지금의 재경부는 바로 이게 문제다. ‘재경부 위기론’의 본질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센스가 없다. 애초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증세논란이 불가피한 조세개혁안 발표(공청회) 일정을 잡았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선거국면에 ‘뜨거운 감자’를 건드린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초연하거나 둔감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재경부는 분명 후자다.
센스가 없다면 뚝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없다. 선거 뒤로 미룬 이상, 조세개혁안 발표는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여당이 참패했다고, 대선이 다가온다고, 어차피 당이나 국민들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듣고 시끄럽게만 할 것 같다고 여기서 덮어버린다면 조세‘개혁’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왜 재경부가 위기일까. 정책적 판단을 자꾸 문제 삼아서? OB들의 스캔들 때문에? 당은 딴죽을 걸고 청와대는 틈을 안 주니까? 예산권이 없으니 영(令)이 안 서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조세개혁의 물거품과정을 꼼꼼히 반추해보면 더 정확한 진단이 나올 것이다.
경제부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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