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 때문에 누워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도 속이 울렁거려요.”
94명의 학생들이 구토와 설사 등 식중독 유사 증상을 보여 22일부터 급식이 전면 중단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중앙여중ㆍ고. 습하고 더웠던 23일 아침 등교 길의 학생들은 등에 둘러 맨 가방 외에 손가방을 하나씩 쥔 채 땀을 쏟으며 교실로 향했다.
급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아무래도 도시락 가방은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비록 급식중단으로 이날 큰 혼란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도시락과 외식으로 점심을 때워야 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른들이 저질러놓은 실수 때문에 밝지 만은 못했다.
나동철 중앙여고 교감은 “급식이 중단된 22일 오후 전교생 학부모들에게 도시락을 들려 보내고 병증이 보이는 아이들은 결석을 해서라도 병원에 보내달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빠짐없이 보냈다” 며 “평소에 4명 정도이던 결석생이 식중독 여파로 하루 20명까지 급증했다” 고 말했다.
급식을 끊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이날 오전 중앙여중 건물 1층에 위치한 보건실에는 이미 30여명의 학생들이 복통을 호소하며 찾아와 약을 받아갔고 일부는 수업에 참가하기 힘들다며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보건교사 A씨는 “배를 부여잡고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며 찾아온 아이들에게 일단 약을 주고 복통만 있는 경우는 응급처치를 위해 손을 바늘로 따주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도시락을 가져온 반면, 사정상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삼삼오오 돈을 모았다. 김밥과 피자 등 점심거리를 ‘외부조달’ 하기 위해 담임으로부터 외출증을 받은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김강일 중앙여중 교감은 “부모가 더 관심을 갖는 저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도시락을 가져온 반면, 3학년 어느 반은 전체인원 34명 중 18명이 도시락을 안 가져왔다”며 “일부 저소득층 가정의 결식아동들에게는 동사무소에서 급식비가 당장 지급되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아무래도 급식만큼 완벽한 식사제공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중앙여고 1학년 이모양은 “귀찮다고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마음대로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빵과 과자만 파는 매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CJ푸드시스템 직원들이 음식을 만들던 조리실을 폐쇄하고 각층에 배치된 음수용 정수기도 사용금지 시켰다. 또 학생들간의 전염을 막기 위해 개인 컵을 사용토록 했다. 하지만 전염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화장실의 경우 사건 발생 후 특별한 소독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둬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을 가중 시켰다.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던 중앙여중 3학년 김성연양은 “지난해에 급식에서 지렁이가 발견되고 식판에서 수세미가 묻어 나오는 등 위생이 불량해 문제가 제기됐지만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며 “아이들이 복통을 일으킨 날도 돼지고기 색깔과 맛이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손수 도시락을 싸 들고 아이들을 직접 찾는 부모들도 하나 둘 눈에 띈다. 한 어머니는 “급식이 못 미더웠는데 이렇게 된 이상 당분간 밥은 엄마가 직접 챙겨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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