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공영형 혁신학교' 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였다. 외국어고등학교의 학생선발 지역을 제한하겠다는 부수적인 발표가 이해당사자들을 더 자극하게 되면서 본안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외고 문제 역시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지만, 공영형 혁신학교 방안은 우리 교육의 좀더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어서 지금처럼 지나쳐 버려서는 안될 듯하다.
● 사립학교 재편 계기 될 수 있어
공영형 혁신학교 방안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방안은 사립학교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사립학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립학교나 진배없는 사립학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영형 혁신학교가 기존의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대안이 되도록 하겠다는 교육부 발언은 원칙적으로 사립학교다운 사립학교를 인정해 가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이제까지 건학이념을 구현하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사립학교들이 이번 혁신학교 대안을 신중하게 검토해봄직하다.
이번 발표가 교육혁신이 학교 단위의 자발적인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학교교육의 발전을 얘기하면서 정부가 실지로 취하였던 노선은 위에서 아래로 '시키는' 개혁이었다. 이번 방안은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꿀지 '민간' 운영주체에 맡김으로써('민영화'를 무턱대고 환영할 수는 없지만) 그 노선을 바꾸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좋은' 학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의 하나로 학생들의 '학습능력 향상'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데가 있다.
학교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이 점이 새로울 것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입시위주 교육에 대한 관성적인 경계심 때문에 우리는 학교 목표로 학생들의 성적을 강조하는 것을 금기로 여겨왔다. 이번 발표가 이러한 금기에서 다소나마 자유로워져서 '지식'과 '인성'을 분리하는 이상한 생각을 극복하는 듯하여 반갑다.
이와 같이 공영형 혁신학교 방안에서도 반길 만한 것을 여럿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지로 그 취지가 구현될지 확신할 수 없기는 여전하다. 교육부는 혁신학교가 자율적일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혁신학교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는 평가로 판단하고 평가 결과가 안 좋으면 그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데, 이때 평가는 교육부의 의도를 반영하기 마련일 것이므로 결국 교육부의 안목과 수준을 벗어나는 자율은 제어될 것이다.
이번 외고 학생선발 지역 제한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우리 정책은 일단 '규제'로 문제를 누르려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오래 걸리더라도 순리의 흐름을 조율하려는 참을성을 교육정책에서 보기 어렵다. 학교의 좋고 나쁨을(그래서 학교 선택 여부를) 입시성적으로 판단하는 우리사회의 습성을 혁신학교가 극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목고의 방안을 포함하여, '새로운 학교'를 표방하였던 과거 모든 방안이 사실상 '대입의 거미줄'에 걸려 희생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번 방안이라고 예외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 규제 위주 교육정책 관성 벗어나야
학교 교육의 발전은 종합적이고 누적적이며 장기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이 진부한 지적이 계속 유효한 것은 공영형 혁신학교 방안이 여전히 다른 교육정책들과 유리된 점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 교육사를 충분히 감안하고 있지 못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공영형 혁신학교 방안은 사립학교법 개정 전에 사립학교 문제를 풀어가는 대안으로 연계하여 구안되었어야 더 적절했다.
그리고 그 방안을 구안하는 작업은 입시경쟁 또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전의 일이기보다, 좀더 근원적으로 중등교육의 성격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업이 되도록 했어야 했다.
강태중ㆍ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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